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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한남?”… 소개팅 성공 기준된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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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한남?”… 소개팅 성공 기준된 페미니즘

입력
2017.12.04 20: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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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소개팅남 계속 만날지

성차별·여혐 등 언행으로 결정

남성들 “고작 몇마디로 판단해서야

무슨 말을 해도 부정적 해석” 불만

얼마 전 소개팅을 한 직장인 강모(27)씨는 “첫인상은 괜찮았는데 대화를 할수록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여행 경험을 이야기하던 상대가 “여행지에서 또래 여자들을 만났는데 반갑긴 했어도 같이 다니지는 않았다”며 “성격이 까다로운 것 같고. 담배도 피우고”라고 말했기 때문. 강씨는 “흡연자는 아니지만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게 뭐 어때’라는 반감이 들더라”며 “(상대가)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담배 말고) 다른 부분에서도 이러쿵저러쿵할 것 같았다”고 했다. 한 번 더 보자는 ‘애프터’ 신청은 당연히 거절했다.

각종 여성혐오와 차별에 대한 반작용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면서 무심코 넘겼던 “여자는…”처럼 성 역할을 구분 짓는 언행이 첫인상을 결정짓는 주요 기준이 되고 있다. 특히 소개팅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을 파악해 계속 관계를 이어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그 잣대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30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성인 남녀 1,039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7명(74.1%)이 “여성혐오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을 정도로 여성혐오가 심한 사회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한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생존 기술’인 셈. 이에 “감시 당하는 기분” 등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는 남성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일부 여성은 우연히 듣게 되는 말과 행동으로 판단하는 것을 넘어 성향을 적극 파악한다. “‘유난스럽다’ ‘피곤하다’는 얘기를 들을지언정, 관계가 진전된 뒤에 실망하는 것보단 낫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원생 김모(29)씨는 “소개팅을 주고받을 때 ‘한남(한국 남자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냐’고 묻는 게 습관이 됐다”며 “‘애교 부리는 여자’ ‘잘 챙겨주는 여자’를 이상형으로 꼽는 남자는 여성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껄끄럽다”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페미니즘에 덜 민감한 남자들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고작 몇 마디 말로 여성혐오냐, 아니냐가 갈리는 게 억울하기도 하거니와 처음 만나는 자리부터 ‘성 인지 감수성’을 평가 기준으로 들이대는 건 ‘과하다’는 불만이다. 직장인 정모(33)씨는 “두 달 전 소개팅 상대가 만난 지 30분 만에 대뜸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에 대답을 얼버무렸더니 ‘평소 생각을 안 하시나 봐요’라고 실망스럽단 반응을 보이더라”며 “어떤 말을 해도 부정적으로 해석할 것 같고 괜히 평가 대상이 된 듯한 기분도 들어 그 뒤론 말을 아꼈다”고 털어놨다.

소개팅을 기피하는 이유도 된다. 직장인 A(32)씨는 “페미니스트라고 말만 하고는 정작 식사비 등을 동등하게 각자 내자고 하는 건 잘 보지 못했다”며 “결국 이런저런 핑계라는 생각이 들고 첫만남부터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참아가면서 공을 들이고 싶지 않더라”고 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 뒤 혹여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안정적인 상호작용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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