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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티 캐러웨이

입력
2017.01.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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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12

해티 캐러웨이. 그는 보궐선거가 아닌 일반선거로 당선된 첫 상원의원이었다. history.house.gov
해티 캐러웨이. 그는 보궐선거가 아닌 일반선거로 당선된 첫 상원의원이었다. history.house.gov

1923년 미국 최초로 주 하원의원ㆍ대변인 미니 크레이그를 소개한 적 있지만, 1920년 수정헌법 19조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뒤로도 여성의 의회 진출은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의원인 남편이 임기 중 사망하는 등 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경우, 보궐선거에 배우자(대부분 아내)를 후보로 내세우던 관행은, 차별 현실의 역설적 반영이었다. 그들에게 기대된 건 동정표로 당선돼 얼마 안 남은 임기 동안 충실한 거수기로서 기능해달라는 거였다.

미국 최초의 ‘정식’ 여성 상원의원 해티 캐러웨이(Hattie O. Wyatt Caraway, 1878~1950)는 그 관행을 깨부순 첫 정치인이었다. 그는 아칸소 주 상원의원이던 남편이 숨지자 보궐선거(32년 1월 12일)에 출마해 몇 달 일한 뒤 그 해 5월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여성이라고 다른 누군가가 마련해 주고 앉혀 주는 자리에만 앉을 수 있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의 당찬 선언에 루이지애나 출신의 자유주의 정치인 휴이 롱(Huey Long)이 화답했고, 그의 지지와 선거 지원 등에 힘입어 캐러웨이는 11월 당선했다.

테네시주의 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딕슨노멀 칼리지를 나와 교사로 일하다 1902년 대학서 만난 타데우스 캐러웨이(Thaddeus Caraway)와 결혼했다. 법률가였던 남편이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 1912년 하원의원이 되고 21년 상원의원에 당선돼 정치적 야심을 펼쳐가는 동안, 해티는 세 아이를 키우며 살림과 가족 목화농장을 돌봤다.

엉겁결에 시작한 정치였지만, 그는 적성과 재능이 있었다. 의원 시절 그의 별명은 ‘조용한 해티(Silent Hattie)’였다고 한다. 설은 엇갈리지만, 조용하기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한편 여러 여성 선출직 장벽을 낮추는 데 열성적으로 앞장섰고, 스스로도 43년 최초 상원 상임위(Committee on Enrollde Bills)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남부 민주당 의원으로서 ‘(흑인)반 린치법’ 등 인종 이슈에선 백인 편에 서서 반대했다. 그는 두 차례 연임하며 14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44년 낙선 후 루스벨트-트루먼 정부의 고용보장위원회 등에서 50년 초까지 일한 뒤 그 해 말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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