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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상+외환’ 패키지 딜 공세에 한국은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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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상+외환’ 패키지 딜 공세에 한국은 속수무책

입력
2018.03.30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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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역대표부 홈페이지에

FTAㆍ철강 관세 등 설명하며

“환율조작 금지 등 규제 담은

한국과 MOU 최종 단계” 밝혀

한국 “환율은 별개” 반박했지만

정부 부처간 칸막이에 막혀

FTA 카드로 활용도 못하고

미국에 끌려가는 상황 만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트위터 계정에서 "미 무역대표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을 한국과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막 발표했다"며 "미국과 한국 노동자들을 위한 위대한 합의"라고 치켜세웠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FTA는 물론 철강 관세와 환율 문제까지 성과를 거뒀다고 내세우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트위터 계정에서 "미 무역대표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을 한국과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막 발표했다"며 "미국과 한국 노동자들을 위한 위대한 합의"라고 치켜세웠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FTA는 물론 철강 관세와 환율 문제까지 성과를 거뒀다고 내세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한미 통상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철강, 환율 문제 등을 서로 연결된 하나의 안건(패키지 딜)으로 접근해 국익을 극대화한 반면 우리나라는 부처간 칸막이에 전략적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자칫 환율주권까지 내 줄 위기에 몰렸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28일(현지시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한국과의 협상에서 미국 무역 정책과 국가 안보 결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Fact Sheets)를 통해 한미 FTA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 등의 협상 결과를 설명하며 ‘환율 협정’(Currency Agreement)을 함께 적시했다. USTR는 환율 협정 부분에서 “경쟁적인 통화 저평가, 무역과 투자 부분에서 이익을 올리기 위한 환율 조작 등을 금지하는 강한 규제들을 담은 양해각서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도 이날 미 CNBC방송에 출연, “한국과의 협상은 철강과 외환, 한미FTA 등을 개혁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서로 다른 세 분야의 협상이 함께 타결된 것은 역사적인 일로, 그 결과에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문제가 한미 통상 현안의 핵심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한미FTA와 환율은 별개라며 즉각 반발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9일 “외환위기를 두 번이나 겪은 우리나라에서 환율을 협상 대상으로 삼는 건 정치적으로나 국민 감정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환율 이면 합의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이어 “협상 파트너인 미 재무부에 강력 항의했다”며 “미 정부가 협상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별개인 환율 문제까지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인식은 스스로 얼마나 안이하게 미국과의 협상에 임했는지 자인하는 것이란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미국 통상 협상의 핵심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환율을 조작해 막대한 대미 흑자를 보고 있다는 게 미국의 기본 생각인 만큼 미국에겐 환율 문제가 관세보다 더 중요한 통상 현안”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러한 환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대상으로 한국을 지목했는데 우린 이런 앞뒤 사정도 모른 채 협상하다 당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도 환율 문제를 넣으려다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미FTA 합의로 미국이 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무역협상에서도 환율 문제를 제안할 공산이 커졌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환율과 관련해선 우리 정부의 선택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데에 있다. 기재부는 미 재무부가 다음 달 발표 예정인 환율보고서와 관련해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 국채 매입 현황 등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는 USTR가 한국과의 협상 성과로 밝힌 ‘환율 조작 금지 등을 담은 강한 규제’와 사실상 내용이 같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방위비 분담, 한미FTA, 철강 관세 등 미국과의 협상 대부분이 우리가 내줘야 하는 것이고 그 중 환율은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차피 환율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오히려 한미FTA 정식 의제로 올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등 다른 분야의 국익을 챙기는 전략적 카드로 활용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부처 칸막이에 의해 봉쇄됐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초 한미FTA 의제로 올리자는 미국 측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며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 측이 이 문제를 제시했다는 얘기를 통산교섭본부로부터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큰 틀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채 기재부와 미 재무부 간 문제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부 소관이 아닌 문제까지 우리가 개입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USTR의 경우 국무부, 재무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의 통상 현안을 모두 조율해 협상에 나서는 것과 근본적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허 교수는 “기재부는 환율, 산업부는 통상, 외교부는 방위비 등 부처별 안건에만 함몰돼 따로따로 접근하는 고질적인 부처간 칸막이 병폐가 손 한번 못 쓰고 미국에 끌려가는 협상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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