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두면 핵미사일 실전 배치”
게임 시간 얼마 안 남았다는 판단
‘봉쇄ㆍ관리’ 단계 뛰어넘어 ‘반격’
최종적으로 체제 붕괴까지 겨냥
美ㆍ中 등 국제공조에 승패 달려
中 일각의 ‘北과 단절론’에 희망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엔드 게임(End game)’을 시작했다. 엔드 게임은 서양 장기인 체스에서 말이 몇 개 남아 있지 않아 승패가 나기 직전인 상황을 가리킨다. 외교 영역에서는 최후 단계나 결정적 국면의 뜻으로 사용된다. 쉽게 풀어 쓰면 ‘끝장 내기’가 된다.
박 대통령이 16일 국회 연설에 제시한 신(新) 대북 독트린의 뼈대는 ‘더 이상의 협상과 교류는 없다. 김정은 정권이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고강도 압박과 경제 제재만으로 핵무장을 포기시키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굴복시키기 위한 엔드 게임, 즉 최후의 승부를 시작할 것임을 국내와 국제사회를 향해 알린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정책적 선택지는 통상 ‘1단계 묵인, 2단계 봉쇄와 관리, 3단계 반격, 4단계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로 나뉜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그간 북한과의 핵 협상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2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북한은 올 들어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마지막 신뢰까지 깨뜨렸고, 이제는 4단계까지 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3단계를 본격적으로 실행하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선택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게 된다”고 경고한 것은 쓸 수 있는 말이 몇 개 남지 않은 체스 경기처럼 한반도에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엄중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협상이 매번 북한의 배신으로 끝난 만큼, 북한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 단번에 핵 폐기로 가겠다는 뜻이다. ‘북한의 핵 도발 → 6자 회담 복귀 선언 등 북한의 기만적 유화책 →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 완화 → 핵 능력 고도화’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계산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전날 연설에서 ‘북한 체제 붕괴’를 입에 올려 1980년대 중반 이후 30년을 끌어온 북핵 문제를 종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질서를 주도적으로 재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현재로선 4단계 레짐 체인지 카드를 사용할 결심을 굳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4단계까지 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북한 압박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시작한 엔드 게임의 성패는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의 공조와 협력 수위에 달려 있다. 미국은 이미 북미 대화 등을 통한 단계적 북핵 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었고, 북한의 나쁜 행동을 절대로 보상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그간 유지해온 ‘전략적 인내’를 포기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북한의 마지막 돈줄인 중국이 북한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한, 김정은 정권은 핵 포기를 생각할 만큼의 심각한 생존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도입 선언으로 중국이 토라져 있긴 하지만, 북한에 대한 태도 변화가 미세하게 감지되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중국은 2006년과 2009년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한 바 있다. 동북아 질서를 뒤흔드는 김정은 정권의 잇따른 돌발 행동을 지켜 본 중국 정부와 학계 일부에서 “중국 안보를 위해 북한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완충지대론’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는 조짐도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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