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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ㆍ北 아슬아슬 ‘말폭탄’ 제동 걸 국제 리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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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ㆍ北 아슬아슬 ‘말폭탄’ 제동 걸 국제 리더가 없다

입력
2017.09.2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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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회 앞둔 시진핑, 영향력 발휘 못하고 침묵

아베는 대화 무용론… 한미 공조에 균열 야기

문 대통령, 북에 지렛대 없어 ‘한반도 운전자’ 무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앨라버마 주에서 지지자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앨라버마 주에서 지지자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간의 말 폭탄전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지만 이를 제어하거나 중재할 국제적 리더가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의 막장 질주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는데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미 주류 언론들의 비판, 참모들의 만류 뿐만 아니라 우방국 정상들의 반대 의사 표명에도 대북 공세를 멈추지 않는 양상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히려 한반도 긴장을 더욱 몰아붙이고 있는 반면,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갖지 못해 외교적 개입의 공간을 찾지 못하고 위기 국면으로 끌려 가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의 ‘초강경 조치’ 성명에 이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3일(현지시간) 유엔 연설에서 미 본토에 대한 로켓 발사를 위협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하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던 중국의 존재감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특히 시 주석은 이달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이후 미국 측이 밝힌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 외에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낸 이번 72차 유엔 총회에 불참한 시 주석은 내달 집권 2기 구도를 결정하는 제19차 당대회를 앞두고 내부 권력 투쟁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 압박에 마지 못한 듯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원유 공급 중단을 통해 확실하게 북한 숨통을 조이는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속 빈 대국’의 모습만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최근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중국 매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중국을 향해 되레 큰 소리를 치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3일 중국 전문가들을 인용해 “베이징의 고요는 북한을 통제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영향력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 쪽도 마찬가지다. 그가 19일 유엔 연설에서 쏟아낸 거친 북한 공격과 군사 옵션 경고가 북한의 핵 도발을 더욱 가속화하고 동맹국간 분열을 촉발하는 역효과만 낼 수 있다고 미 주류 언론들이 국제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연일 비판하고 있지만, 주류 언론들과 척을 져왔던 그에겐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트위터에선 김 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불렀고, 같은 날 저녁 지지자 연설에서 ‘작은 로켓맨’으로 부르며 “진작에 처리됐어야 했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대통령 참모들이 유엔 연설에 앞서 김정은에 대한 인신 공격이 북핵 협상의 여지를 차단하고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며 만류했다(LA 타임스)’는 정황을 보면 참모들의 조언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간 줄곧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왔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군사 옵션 가능성에 대해 “국가안보회의의 조언을 듣겠지만, 근본적으로 대통령 결정”이라고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우방국 정상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적 언사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며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맹국간 균열만 노출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험악한 발언들은 치명적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견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되레 방만한 유엔의 개혁을 내세워 그를 몰아 붙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기회라도 만난 듯 유엔 연설에서 대화 무용론을 설파하며 한반도 위기의 기어를 당기고 있다. 특히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화를 냈다’고 언론에 흘리며 한미 공조 균열조차 노리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21일 유엔 연설에서 평화적 해법을 거듭 강조했지만 같은 날 나온 김정은의 성명과 리 외무상의 ‘태평양 수소폭탄 실험’ 발언이 미 언론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묻혀 버렸다. 문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운전자론이 무기력해진 것은 개성공단 폐쇄 이후 경제적인 대북 레버리지가 전혀 없고, 오랫동안의 대화 공백으로 대북 소통 채널도 닫힌데다 군사적 억제 수단도 사실상 없어 이를 추동할 동력 자체가 고갈된 탓이란 분석이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800만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 건으로 미국에 해명하는 상황이 된 것도 입지를 더욱 좁힌 요인으로 꼽힌다. 구조적 악조건과 외교 전략상의 실기 등이 맞물려 올해 5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던 ‘협상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그간 허장성세식 수사와 과장된 협박을 구사하는 대표적 나라가 북한이었다. 하지만 정적들을 상대로 저돌적 레토릭을 구사하며 대통령까지 오른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과 북한간 레토릭의 충돌이 제동장치를 잃은 상황이 됐다. 이를 제어할 국제 리더마저 부재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시계 제로’ 상태에 접어들었다.

뉴욕=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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