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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드 대신 권총' 영상을 본 심판들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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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드 대신 권총' 영상을 본 심판들의 반응

입력
2015.10.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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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인터넷상에선 심판이 경기 도중 권총을 꺼내 들어 선수를 위협하는 충격적인 영상이 화제가 됐다. 브라질 남동부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아마추어 지역 리그 브루마디뉴와 아만테스 다 볼라의 경기에서 주심 가브리엘 무르타가 꺼내 든 권총에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발단은 이렇다. 양팀 선수들의 승부욕에 감정까지 격해지면서 불똥은 심판에게까지 튀었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아만테스 다 볼라의 선수들이 무르타 주심을 밀치고 때리자 화가 난 주심은 라커룸에서 권총을 꺼내 와 선수들을 위협했다. 다행히 동료 심판과 선수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사상자가 발생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들에 따르면 브라질 축구협회 측은 이날 사건에 대해 심판이 당시 선수의 폭행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저지른 일이라며 심판 자격 정지와 함께 정신과 치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연히 이 사건은 국내 심판들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몇몇 심판과 이를 놓고 나눈 대화에서 나온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도 있지만 국제 심판은 물론 아마추어 심판까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개인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국가고, 아무리 화가 날 상황이었더라도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이었다는 게 전체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대목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프로심판 출신 A씨는 “너무도 서글픈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상황 자체에 대해선 심판이 너무했다는 데 이견이 없었으나 근본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된 탓에 생긴 일이라는 의미다.

실제 국내 축구계에서도 심판과 선수 혹은 심판과 지도자의 갈등은 비일비재하다. 대부분이 불리한 판정에 불만을 품은 쪽에서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심판을 향해 일방적인 폭언이나 폭력을 가하는 경우다. 지난 6월 열린 한 대학 경기에서는 심판이 한 지도자에 심하게 폭행당한 일이 입소문을 탔고, 최근 중등부 경기에선 경기 후 거친 항의를 던진 지도자에 심판이 반박하기 시작하며 거친 언쟁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지난달 19일 기자가 배정됐던 초등부 경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도자가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항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기 후 한 학부모가 본부석을 찾아와 “(해당 경기의) 주심 이름 좀 대라”며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이렇게 심판들은 늘상 ‘총 맞은 것처럼’ 가슴 아픈 모욕을 견뎌내는 날이 많다.

한 원로 축구관계자는 “1970~80년대엔 경기장 안팎에서 심판 멱살 잡히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신인심판 강습회나 심판 보수교육에선 오심 사례를 보여주며 “이러면 멱살 잡힌다”는 식의 자조 섞인 코멘트도 자주 나온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얘기다.

물론 ‘판정만 잘 이뤄졌으면 그럴 일이 생기겠느냐’는 지도자들의 말도 맞다. 심판의 자질 부족이나 순간적인 판단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이 승패에 큰 영향을 준다면 그만큼 억장이 무너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심판에 대한 폭언과 폭력이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심판이 축구장에서 사랑 받는 존재가 되기는 힘들지만 지도자, 선수, 서포터즈와 함께 축구를 구성하는 4주체로서 존중을 받아야 함은 분명하다.

세계 축구계 전반에서 ‘리스펙트(respect)’캠페인이 펼쳐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매년 심판 요원 7,000여명이 경기 중 받은 모욕적인 욕설과 협박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같은 고민에 빠졌던 대한축구협회도 지난해부터 이 캠페인을 도입했다. 2010년 11건이었던 경기장 폭력 및 폭언행위가 2011년 28건, 2012년엔 31건으로 늘어나는 추세였고, 심판에 대한 폭력 행위도 2010년 6건에서 2012년엔 10건으로 늘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심판 자격 취득자는 늘어나고 있음에도 활동 심판 수는 줄어들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 캠페인에 대해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축구를 통해 더욱 행복해지는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라고 소개했다. 각 주체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축구팬들도 축구에 대한 애정이 한층 깊어질 거라는 기대에서다.

물론 리스펙트 캠페인은 심판을 향한 일방적인 존중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심판들 역시 불필요한 권위의식을 벗어내고 한 발 더 뛰며 오심 빈도를 줄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침착함과 냉철함도 심판의 주요 덕목이다. 선수들의 거친 항의에 권총을 들고 뛰어나오는 일은 절대 다시 일어나선 안될 일이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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