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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팔미라 개선문

입력
2015.10.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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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Silk Road)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독일 지질ㆍ지리학자인 리히트호펜(1833~1905)이다. 1869년부터 3년 여간 중국 각지를 답사한 그는 대륙의 지질 및 지리적 특성을 담은 다섯 권짜리 저서 중국을 펴냈는데, 그 책 1권의 동서교류사에서 ‘중국-중앙아시아-서북인도’에 이르는 교역로를 실크로드라고 명명했다. 핵심 교역품이 중국의 비단이었다는 점에 착안한 작명이다. 그런데 나중에 고대 실크로드가 서북인도보다 훨씬 서쪽까지 이어졌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팔미라 유적 발굴을 통해서다.

▦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북동쪽 사막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팔미라엔 아득한 선사 때부터 인간이 정주했다. 지중해 동쪽 연안이기도 해서 기원전 페르시아제국 당시엔 이미 동서를 잇는 상업도시로 융성했다. 이후 로마에 속했다가 사산 왕조와의 전쟁에서 로마 편을 들어 승리를 도우면서 독립해 3세기 제노비아 여왕(섭정) 땐 제국을 선포하며 불꽃 같은 번영을 일군 후 멸망했다. 그런데 리히트 호펜 사후 팔미라에서 다량의 한나라 시대 비단(漢錦)이 발견됨으로써 실크로드가 인도를 찍고 중동을 관통해 지중해 연안까지 이어졌음이 밝혀진 것이다.

▦ 모래산 자락에 신기루처럼 남아 있는 팔미라의 유적들은 사라진 문명에 대한 아련한 애수(哀愁)를 불러 일으킨다. 유적지 중앙을 관통하는 1.1㎞의 웅장한 석조 대열주들은 석양 속에서 찬란한 번영의 추억을 웅변한다. 로마식 원형극장과 현지(가나안 지역)의 농경시대 주신(主神)인 바알(Baal)에 바친 바알 신전의 공존은 동서 문화의 교차로로서 팔미라 문화의 활달한 특성을 자랑한다. 11세기의 지진으로 황폐화한 유적이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다.

▦ 팔미라 유적이 최근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된 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만행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을 틈타 지난 5월 팔미라를 점령한 IS는 그곳에서 평생을 유적 연구에 바쳐온 시리아인 고고학자 칼리드 아사드 박사를 참수해 대열주에 내거는가 하면, 우상(偶像)을 없앤다며 8월엔 그나마 온전한 바알 신전까지 파괴했다. 급기야 엊그제는 종교시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석조 대열주의 입구에 서 있는 아치형 개선문까지 완전히 폭파했다. 과거 탈레반의 바미얀 석불 폭파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광기가 새삼 섬뜩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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