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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7.11.27 15:22
수정 : 2017.11.27 15:23

[김월회 칼럼] 공자와 자산, ‘소인들의 영웅’을 처형하다

등록 : 2017.11.27 15:22
수정 : 2017.11.27 15:23

공자 하면 성인이 떠오르고 성인하면 어짊이나 가없는 사랑 등이 연상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형 같은 극형과는 왠지 무관할 듯싶다.

그러나 역사는 달랐다. 법무장관 격인 대사구에 제수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소정묘란 인물을 처형했다.

소정묘는 노나라 저명 인사였고, 일설에 의하면 당시 발흥했던 민간교육 시장에서 공자의 호적수였다고 한다. 게다가 공자는 자기 ‘롤 모델’인 주공의 “의로운 형벌, 의로운 처형일지라도 사용을 삼가라”(‘서경’)는 가르침도 어겼다. 소정묘 처형은 그가 정사를 담당한 후 처음으로 취한 조치였으니, 먼저 교화에 힘써야 한다는 주공의 권계를 대놓고 무시한 셈이다.

여러 모로 이 사건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진이(仁者)만이 능히 사람을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있다”(‘논어’)는, 자신이 믿는 진리의 실천이었을지라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마침 제자 하나가 그 까닭을 물었다. 공자는 무척이나 기다렸다는 듯이 처형 이유를 밝혔다. 그의 학통을 이어받은 순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 이유는 무려 다섯이나 됐다. 이들은 하나만 범해도 극형을 면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고 한다.

마음이 열려 있는 듯싶지만 실상은 음험한 것, 행실은 편파적이건만 원만해 보이는 것, 거짓을 말함에도 그럴 듯하게 꾸미는 것, 추잡한 것만 기억함에도 겉으론 해박한 것, 그릇된 것만 따르지만 도움인 양 행하는 것(‘순자’).

공자는, 소정묘가 이 다섯 해악을 다 지녔던 까닭에 그의 말은 사악함을 꾸며 대중을 호도할 수 있었으며, 그의 역량은 올바름을 척지고도 우뚝 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따르는 자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니, 그러한 ‘소인들의 영웅’은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나라에 도가 제대로 작동되는 한 그런 인물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됨은 당연한 이치라는 뜻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공자가 비판했던 법가도 매일반이었다. 법가의 선하(先河)를 이룬 인물 가운데 공자보다 선배 세대였던 정나라의 자산이란 인물이 있었다. 춘추시대 명재상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중국사 최초로 성문법을 시행한 이였다. 그럼에도 공자가 그 죽음을 안타까워했을 정도로 그는 정치를 꽤 잘했다. 공자가 법치에 동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성문법이든 불문법이든, 법에 의한 통치를 일관되게 반대했다. 주된 이유는 법치가 인민의 도덕적 역량 증진과 무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법을 잘 지킴이 자동적으로 도덕 역량의 진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통찰이었다. 응당 정사는 법 준수의 근간을 이루는 도덕의 증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정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법이 이로우면 지키고 이롭지 않으면 법을 어겨서라도 이익을 도모하는 풍조가 오히려 조장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그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이미 당시에 법치를 조롱하며 이익을 추구했던 인물이 있었다. 근자에 들어, 문헌에 기록된 중국사 최초의 변호사라고 치장되는 등석이란 자가 바로 그다.

당시 정나라에선 정사(政事)에 대한 의견을 벽에 써서 붙이곤 했다. 오늘날로 치자면 대자보인 셈이다. 그런데 이를 자산이 금하자 등석은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정치 비판을 이어갔다. 편지는 대자보 게시와 분명 다르므로 법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이에 자산은 편지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방식을 금했다. 그러자 등석은 물품을 보내면서 그 안에 정견을 담은 글을 함께 넣어 보냈다. 정견이 담긴 글을 물품으로 취급한 것으로, 곧 편지의 형식을 띠지 않은 셈이기에 이 또한 법령을 어겼다고 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등석은 자산의 정치를 힘써 비난하였다. 그는 송사를 당한 백성에게 큰 건은 큰 대가를, 작은 건은 작은 대가를 챙기면서 소송에 임하는 법을 가르쳤다. ‘여씨춘추’에 따르면, 그는 그른 것을 옳다 하고 바른 것을 틀렸다고 가르쳐 결국 옳고 그름의 기준이, 또 해도 되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의 기준이 매일같이 변하게 됐다고 한다. 또 그는 이기고 싶으면 이기게 해주고 죄를 주고 싶으면 처벌받도록 했다고도 한다. 나라가 심히 혼란해지고 사람들의 입에선 비난을 위한 비난과 이치에 어긋난 책망만이 가득했다.

이설이 있기는 하지만, 자산은 그런 세태를 유발한 등석을 단호하게 처형하였다. 순자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하면 처형 근거는 이러했다. 등석은 괴상한 학설과 이상한 언사임에도 말을 유창하게 꾸며댄다. 하여 그 말은 쓸모가 없어 세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정치의 기강으로 삼을 수도 없지만, 말만이라도 그럴 듯하게 하다 보니 어리석은 대중은 미혹되고 만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500여 년 전, 고대 중국서 있었던 일임에도 너무나도 친숙하다. 어느 것 하나 지금 여기의 우리 세태와 다르지 않다. 당시에 비해 오늘날이 훨씬 문명화됐다고 자부해왔음에도 말이다. 선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도 진화를 멈추지 않기에, 아니 지킬 게 많기에 더욱 치열하게 악화(惡化)를 거듭한 결과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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