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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리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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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리자의 습격

입력
2017.03.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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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희주씨 살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건배!"

지난해 회사를 그만둔 박희주(28∙가명)씨는 송별회 자리에서 인신공격을 당했다. “퇴사 후 운동하며 살을 뺄 예정”이라는 박씨의 말에 사장이 조롱 섞인 건배사를 했다.

사장은 박씨가 근무했던 3년 내내 신체를 소재로 모멸감을 주는 말을 했다. 박씨는 “다리도 두꺼운데 달라붙는 바지를 입냐고 말해서 운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인터넷에서는 박씨가 근무한 회사의 사장 같은 사람들을 ‘고나리자’로 부른다. 고나리란 ‘관리’의 오타에서 비롯된 말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언행에 간섭하며 문제 삼은 행위를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다. 여기에 사람을 의미하는 ‘자’를 붙여 이런 행위를 자주하는 사람들을 고나리자로 부른다.

외모부터 소비 행태까지, 고나리자의 비판 대상에 한계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외모부터 소비 행태까지, 고나리자의 비판 대상에 한계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나리자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분히 이런 ‘지적질’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에서 고나리자에 대한 갈등이 심하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상하 관계가 자칫 잘못하면 업무 이외 사적인 일로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막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직장인 서정원(29∙가명)씨는 “커피 타오라”는 상사의 지시를 거부했다가 “여자가 기가 세다” “성질 좀 죽여라” 등의 타박을 들었다. 서씨는 “일개 사원이라고 이렇게 막 대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고나리자 문제는 비단 직장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서도 고나리자 문제가 자주 불거진다. 상품 기획자 김성수(29∙가명)씨는 올리는 사진마다 댓글로 시비를 거는 지인 때문에 요즘 예민하다. 김씨는 “방문한 식당의 대표 메뉴를 먹지 않았다는 핀잔부터 가구 배치 지적까지 일상을 통제 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해외영업 사원인 최가희(30∙가명)씨는 명품 가방을 들고 15년 지기를 만나러 갔다가 “가방에 몇 백 만원씩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곧바로 최씨는 “이해하지 말라”고 응수했지만 다른 가치관을 강요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누이 싫고 매부도 싫은 고나리 짓 왜 하는 거죠?

이처럼 사람들은 고나리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개인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어 뜻하지 않은 갈등을 유발하는 사람이라는 시선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나리자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것은 사회적 문제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나리자의 등장을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의 강박관념에서 찾고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조종사회”라며 “좋지 않은 것을 분석하고 원인을 밝혀내 바꿔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보니 화살표가 타인에게 쏠린 것”이라고 고나리자의 등장 배경을 분석했다.

화자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서열의식이 고나리자를 낳았다는 시각도 있다. 상대를 ‘관리’하면서 서열이 높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직장인 박은서(30)씨는 “예전 직장 선배에게 도 넘은 지적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더니 입사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쌩 신입답게 행동하라’는 타박만 들었다”며 쓰게 웃었다.

불안감, 상대적으로 낮은 자존감도 고나리자의 이면에 도사린 요인으로 꼽힌다. 더러 자신의 입지가 불안할 때 상대를 고의로 낮춰 정신적 위안을 얻으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나리자로 비롯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려면 일방적인 지적보다 상대의 처지와 상황을 공감하는 열린 소통으로 대화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윤 교수는 “좋은 의도로 한 말이라도 서로 도움 되지 않는다면 소통법을 새로 바꿔야 한다”며 “많은 시간과 연습이 요구되지만 원만한 관계를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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