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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등록 : 2016.06.17 15:06
수정 : 2016.06.17 15:22

[이종필의 제5원소] 20대 국회와 한국의 기초과학

등록 : 2016.06.17 15:06
수정 : 2016.06.17 15:22

20대 국회 원구성 법정시한을 하루 앞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바라본 국회본청 전경.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지난 13일 제20대 국회가 개원했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가 한국사회 전반에 참신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일선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20대 국회가 한국 기초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얼마 전 ‘네이처’지의 한국 과학계 비판 기사가 화제였다. 2014년 기준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은 국내총생산 대비 4.29%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논문 수는 독일이나 일본에 못 미치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아직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4.29%라는 숫자에는 통계의 함정도 있다. 2014년 R&D의 75%는 기업 몫이다. 정부의 R&D 투자도 산업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 나온 문서를 보거나 관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기초과학’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정부에서 말하는 ‘기초과학’은 대체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원천기술에 가깝다. 최근 정부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사업”의 명칭 자체가 이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초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과학기술이든, 그 정체가 무엇이든 결국엔 죄다 국가경제발전에 복무해야 한다는 인식 탓이 크다. 특히 기초과학은 ‘과학기술’로 뭉뚱그려진 개념 속에서 그 존재감이 아주 작다. 기초과학이 그 자체로 존재의의가 있음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나리자’를 보면서 이 그림이 국가경제발전이나 국가안보에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 묻지 않는다. ‘모나리자’는 인간 지성의 최극단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기초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알파고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산업계가 곧바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인재라기보다 급변하는 상황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형 인재이다. 이런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분야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초과학(또는 기초학문)이 꼭 있어야 한다. 어차피 돈이 되는 응용분야는 기업이나 산업계가 먹여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은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지 않는 이상 고사하고 만다.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기초과학을 경제 활성화의 도구로 바라보는 이런 시선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지난 4ㆍ13 총선 당시 주요 3당의 과학기술분야 정책은 거의 비슷하다. 과학기술은 여전히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미래성장동력의 수단으로 인식될 뿐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말은 있지만 입에 발린 수사 이상으로 들리지 않는다. 자금지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

‘R&D 비중 세계 최고’의 환상 속에서 현장의 기초과학은 말라 죽어가고 있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가 지난 2014년 12월 공개한 내용을 보면 공시대상 전국 161개 대학 중 화학과 61개, 수학과 58개, 물리학과는 47개에 불과하다. 세계 석학들이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의뢰를 받아 최근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은 여전히 ‘남들 따라하기 과학’에 매몰돼 있다. 그 사이 중국 대학들의 성장은 거침이 없다. ‘네이처’가 지난 4월 발표한 자체 연구성과지표를 보면 전체 50위권 내 중국 대학이 7개인 반면 서울대는 57위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기초과학이 무너지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대학은 자유롭고 선도적인 연구가 가능한 곳일뿐더러 학문 후속세대를 일차적으로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소한다. 20대 국회에서 기초과학을 (그리고 다른 기초학문도) 보호하는 특별법이라도 제정해 주기 바란다. 반달가슴곰 같은 멸종위기동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국가가 보호한다. 생물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다. 한국의 기초과학은 멸종위기이다. 기초과학 종사자가 곰만도 못한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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