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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편성서 2조→0원, 여야 흥정에 5000억 '고무줄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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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편성서 2조→0원, 여야 흥정에 5000억 '고무줄 예산'

입력
2014.12.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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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욱부 2조 국고 편성 요구에 기재부 단 한 푼도 반영 안 해

여야 모두 예산 못 떼 준다 버텨… 5000억 국고 지원 겨우 합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이학재(오른쪽 두 번째) 새누리당 의원과 이춘석(왼쪽 두 번째) 새정치연합 의원이 30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증액 심사를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이학재(오른쪽 두 번째) 새누리당 의원과 이춘석(왼쪽 두 번째) 새정치연합 의원이 30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증액 심사를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누리과정(3~5세 보육지원) 예산편성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정부 예산안 편성과 국회 심의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리과정 예산 논란이 증폭된 데는 우선 법적 미비와 세수 부족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정치적 나눠먹기’란 비판을 받는 현행 주먹구구식의 예산심의시스템 탓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국회 새해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누리과정 예산 관련 국고 지원분을 관행적으로 정치권 몫으로 주어지는 여유분 예산에서 빼 쓸 것을 제안하면서 반발이 거셌던 것으로 알려졌다. ‘깜깜이’ 예산 편성에 더해 ‘짬짬이’ 예산 심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누리과정 예산, 야당 몫 예산으로 반영하라”

30일 정치권과 기재부ㆍ교육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기재부는 올해 9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누리과정에 대한 중앙정부 예산을 반영하지 않으면서, 정치권 몫의 ‘재량 예산’을 이용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새정치연합이 누리과정 지원 예산 5.600억원 편성을 강력하게 요구하자 기재부 측에서는 새정치연합 몫의 재량 예산을 쓰라는 식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통상 새해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예산총액의 1% 가량을 여야 재량 몫으로 암묵적으로 할당한다는 게 정치권의 얘기다. 예산 총액의 1%는 으레 국회에서 삭감돼 여야 지역구 개발 사업 등에 쓰일 것으로 예상하고, 그 만큼 예산을 부풀려 잡아 여유분을 둔다는 것이다. 2015년도 정부 예산 규모가 376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3조7,000억원 가량이 정치권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예산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올해 국회 예산심의에서도 예산안 감액분은 3조5,000억원에서 4조원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예산 감액분을 두고 여야가 증액 심사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의 민원사업 등에 편성한다는 공공연한 관행이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여야가 대체로 7 대 3 비율로 이 예산을 나누는데, 이렇게 따지면 여당 몫이 2조 5,000억원, 야당 몫이 1조2,000억원 가량 된다”고 말했다. 국회가 짧은 심의 기간 동안 방대한 정부 예산안 전체를 꼼꼼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예산심의는 사실상 여야가 밀고 당기기를 하며 '재량 예산’을 지역별로 나눠 갖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야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적 합의로 국고에서 ‘우회지원’ 하는 것으로 결론 난 것도 여야 정치권 모두 자신들의 재량 예산에서는 누리과정 지원에 필요한 예산을 떼 줄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1월 20일 국회 교문위 여야 간사와 3자 협의를 통해 “누리과정 순증분 5,600억원을 국고에서 지원한다”고 잠정 합의했다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퇴짜를 놓으면서 없었던 일이 된 해프닝이 일어난 데도 이 같은 배경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재부가 누리과정 예산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세수 압박에 시달리자 ‘여야 재량 몫 예산’으로 활용하려는 ‘꼼수’를 낸 것 아니겠냐"며 “정부 예산을 두고 기재부가 정치적 거래를 하라고 부추긴 격”이라고 말했다.

‘2조원 → 0원 → 5,000억원’ 고무줄 예산

결과적으로 누리과정에 대해 ‘우회지원’이란 편법을 통해서라도 5,000억원 증액으로 결론이 났듯이, 여당이나 정부도 누리과정 증액 자체를 끝까지 거부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교육부는 새해 예산안 편성을 위한 중기사업계획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 사업을 위해 향후 국비로 매년 4,510억원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교육부는 이어 5월 기재부에 예산요구서를 제출하면서 2015년도 누리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에 해당하는 2조1,545억원을 국고로 편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 세입세출을 따져본 결과 2015년의 경우 지방교육채권 발행으로 충당키로 한 3조원을 제외하더라도 지방교육예산이 3조원 가까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당 교문위 위원 상당수도 누리예산 증액 필요성에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누리과정 예산 지원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이를 ‘0원’으로 삭감해 국회에 제출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정치권 재량 예산’이란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도 ‘누리과정 증액분’을 새해 예산안 처리를 위한 정치적 카드로 십분 활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예산정국의 쟁점이었던 담뱃값 인상, 법인세 정상화 등과 관련해 여당이 누리과정에 대해 일부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야당의 다른 요구를 무력화시켰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정치권 관계자는 “올해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는 과정을 보면,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전락한 예산심의 시스템 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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