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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히 모습 드러낸 세월호... 가까이서라도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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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히 모습 드러낸 세월호... 가까이서라도 기도를...

입력
2017.03.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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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 작업이 개시된 2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미수습자 수습을 기원하는 노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진도=서재훈 기자
세월호 인양 작업이 개시된 2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미수습자 수습을 기원하는 노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진도=서재훈 기자

한 없는 기다림의 공간에 마침내 세월호가 그 참담한 모습을 드러냈다. 23일, 꼭 1,073일 만에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 차가운 바닷물에 잠겼다가 66개의 와이어에 감긴 채 육중한 몸체가 천천히 떠오를 때 멀리서나마 지켜보던 미수습자 가족과 유족은 할말을 잃었다. 눈시울은 붉어지고, 애써 삼켰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 비극의 뭍 팽목항에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시민 60여명이 안전한 인양과 미수습자 9명의 귀환을 기원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끌어 올려진다는 소식에 경향 각지에서 한 걸음에 달려온 이들이다.

2014년 4월 16일 3년 전 그날, 오열하며 피붙이 이름을 부르짖거나 “내 새끼를 구조하는지 직접 봐야겠다”며 눈가를 훔치며 내달리던 가족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주검 앞에 칼날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 유족과 미수습자 가족은 이제 그 끝의 시작을 볼 참이다.

선체에 새겨진 통곡의 이름 ‘SEWOL’은 오랜 시간 몰아친 조류에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희생자 가족과 국민의 가슴에 새겨진 절망과 쓰라림이 시간의 망각에 덮여 사라질 날은 기약 없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선체 일부를 드러낸 이날은 다시 아프고 슬픈 기억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임을 새삼 일깨운다.

고3, 중3, 중1인 세 자녀를 키우는 홍란희(43)씨는 인양 소식에 전남 광주에서 노모와 함께 내려와 유족의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던 팽목항의 찬바람을 맞았다. 홍씨는 “단원고 아이들이 배에 갇혀 찍은 동영상을 보니 우리 애들 말투와 다 똑같아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의 손엔 휴지뭉치가 한껏 젖어있었다. 그는 “아직 속상하고 화나고 눈물만 나고 그렇다. 내 아이도 이 참사를 기억했으면 한다”고 했다.

미수습자 9명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9명의 얼굴 사진이 실린 현수막과 팻말은 진도를 찾은 이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한 60대 여성은 미수습 가족인 권재근씨 부자의 사진을 보고는 “9명의 뼛조각이라도 수습돼 기다린 가족들이 또 한번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고해역 쪽을 향해 말없이 기도를 올렸다. 자원봉사팀장으로 1년간 유족을 돌봤던 장철환씨는 “하루 만에 몸체를 드러냈는데, 왜 진작 들어올리지 못해 유족과 미수습자의 애를 태웠는지…”라며 혀를 찼다.

냉정한 시선으로 ‘비극적 사건의 진실’을 다시 한번 물을 때이기도 하다. 박영규(41)씨는 부인과 함께 7살, 3살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팽목항 방파제를 말 없이 걸었다. 아이들은 이 바다가 얼마나 독하게 사나운지 모른 채 ‘돌아오라’ 등의 메시지가 적힌 타일을 쳐다보며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박씨는 “사는 데 쫓겨서 한번도 여기 못 오다가 인양 소식에 내려왔다”며 “잔혹한 사고현장의 단서들을 빠짐없이 찾아 사고원인을 비롯한 진상의 생생한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했다.

진도=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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