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6.02.18 17:12

[김월회 칼럼] 중국이 유방(劉邦)을 자처한 까닭

등록 : 2016.02.18 17:12

공을 높이 던지는 까닭은 멀리 보내기 위해서다. 2루로 도루하는 주자를 잡기 위해선 최단 거리로 공을 빠르게 던져야 한다.

하늘 높이 온 힘을 다해 던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홈과 2루 사이는 결코 먼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사일도 마찬가지다. 맞붙어 있는 적을 타격하기 위해 대기권 바깥까지 쏘아 올릴 이유가 없다. 더구나 가까운 거리의 적을 타격할 때 관건은 신속함이다. 굳이 하늘 높이 쏘아 올려 상대에게 대처할 시간을 벌어줄 까닭이 전혀 없다. 북한이 우리를 타격할 때 높은 고도까지 미사일을 쏘아 올릴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인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한다고 한다.

예상대로 중국이 반발했다. 우리와 미국은 한사코 부인했지만, 사드는 높은 고도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체제인지라, 중국 감시를 염두에 뒀다고 비칠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은 이유다. 그런데 ‘텍스트의 제국’답게 표현이 제법 인문학적이었다. ‘사기’에 나오는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이란 문구가 그것이다.

항장은 항우 측의 장수이다. 그리고 패공은 유방을 가리킨다. 항우는, 유방이 천하 제패 야심을 드러내자 그를 홍문(鴻門)으로 불렀다. 진의를 확인하고자 했음이다. 당시 열세였던 유방은 부름에 응할 수밖에 없었고, 속과 다른 언사로 항우의 의심을 푸는 데 성공했다. 다만 항우의 책사인 범증은 기필코 유방을 죽여 후환을 없애고자 했다. 하여 항장에게 연회의 흥을 돋운다는 명분으로 칼춤을 추다가 틈을 보아 유방을 죽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항장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패공을 죽이고자 함이다”는 뜻을 지닌 위의 말이 비롯되었다.

이 말에 대해 우리 정부는, 우리는 칼춤을 춘 적이 없다며 중국을 비판했다. 그런데 이러한 대처가 과연 적절했을까? 중국은 이 고사의 인용을 통해 우리를 항우가 아닌 항장에 비겼다. 우리가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투던 항우나 유방 급이 아님은, 속상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항장 급이 아님 또한 자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칼춤을 추지 않았다”가 아니라 응당 “우리는 항장에 불과하지 않다”고 했어야 한다.

그렇다고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나무라서도 곤란하다. 유방이 홍문의 연회에서 항우에게 굴욕적 자세를 취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유방 측엔 훗날 400년을 웃도는 대제국의 기초를 다지고도 남을 인재가 충분히 결집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여건만 조성되면 언제든지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킬 잠재력이 충분한 상태였다. 이는 지금의 미국과 중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아직은 미국을 압도할 만한 힘을 지니지 못해 우리에 경고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국이 우리를 자신과 같은 급으로 여겼기에 우리에게 경고했다고 오판해선 안 된다.

나아가 홍문의 연회가 천하 패권을 놓고 벌인 쟁투의 한 국면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항우 측은 유방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를 굴종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미국이 우격다짐을 한다면 사드는 결국 한반도에 배치될 것이다. 미국으로선 어찌됐든 중국을 제압한 셈이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궁극적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홍문의 연회라는 국면에선 유방이 굴복 당했지만, 종국에 천하를 거머쥔 자는 유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방이 항우를 꺾은 것처럼 중국이 미국을 제압한다는 것은 그들만의 야무진 꿈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고사의 인용을 통해 한국이 중국엔 궁극적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점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늘 그랬듯이 한국을 통해 미국에 말을 걸었던 것이다. 하여 그들은 대놓고 한국을 바둑돌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국이 자기에게 궁극적 목표인 적은 없었다는 소리다.

아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우린 ‘세계-아시아-한국’ 식으로 국제사회서의 위상을 설정하지만 중국은 아니다. 이득이 될 때는 아시아의 일원이라 말하지만, 기본적으론 아시아라는 단위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는다. 그래서 만주 일대를 동북아시아라고 부르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그냥 동북이라고만 한다. ‘동북아공정’이 아니라 ‘동북공정’인 까닭이다. 대신 중국은, 자기가 포함될 수 있는 단위는 세계밖에 없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은 늘 세계에 대고 얘기한다. 우리를 향해 하는 말조차도 그 종착지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라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해지는가. 그러나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대적 강자를 상대할 때에는 사실에 기초함이 가장 믿을 만한 길이다. 자존심이 상해도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강하지 못하면서 굴욕은 왜 꺼려하는가? 강자가 되지도 못하고 약자로도 처신하지 못하면 패망하게 된다.” 유교 경전인 ‘춘추좌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강해지기 위해선 때론 약자로 처신할 필요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G2 급인 중국이 유방을 자처한 것처럼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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