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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 덕혜옹주는 페미니스트?

입력
2016.08.0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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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는 격변의 시대를 산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통해 여성의 신산한 삶을 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덕혜옹주'는 격변의 시대를 산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통해 여성의 신산한 삶을 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있음

여자가 주인공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라는 호칭이 휘황하다. 영화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만으로도 ‘덕혜옹주’는 여성영화라는 호칭을 얻을 만하다.

극장가 최대 대목인 여름시장은 남자들 천지였다. ‘괴물’(2006)에서 이야기 서술의 주요 동인인 중학생 현서(고아성)가 여자이고, 현서의 고모 남주(배두나)가 괴물을 잡는 데 힘을 보태지만 철 없는 중년 남자 강두(송강호)에 비하면 주변 인물이다. 물기 밴 커다란 눈망울로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보고 사는 놈한테 죽는다”고 외쳤던 ‘아저씨’(2010)는 남자를 넘어 사나이 가는 길을 강조한다. 2011년 ‘7광구’의 차해준(하지원)이 ‘협녀’ 본색을 보여주려 했으나 부실한 3D가 큰 벽으로 작용했다. ‘도둑들’(2012)도, ‘설국열차’(2013)도, ‘명량’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도, ‘베테랑’과 ‘암살’(2015)도 남자가 스크린 중심을 차지했다. 여자 하키 국가대표팀의 분투를 그린 ‘국가대표2’(10일 개봉)와 함께 ‘덕혜옹주’가 여름시장에서 어떤 흥행 성과를 올릴 지 관심을 끄는 이유다.

‘국가대표2’보다 ‘덕혜옹주’에 더 눈길이 간다. 귀한 신분으로 태어났다가 굴곡진 일생을 살게 된 덕혜(손예진)의 삶도 삶이지만 영화가 품고 있는 내용들이 흥미로워서다.

덕혜는 황녀이긴 하나 조선의 여자로 태어났다. 남들은 입지 못할 옷을 입고, 호사를 누리긴 해도 여자라는 굴레가 그의 삶에 얹혀 있다. 유교를 기반으로 한 조선왕실의 여자인지라 수라간 나인 출신인 어머니를 어머니라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유학을 빌미로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 정혼한 김장한(박해일)이 찾아와 상하이 망명을 은밀히 제안할 때 덕혜는 오빠 영친왕(박수영)의 의사를 먼저 묻는다.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구문물의 혜택을 받고 있는 성인인데도 생각은 가부장제에 갇혀 있다.

영화 후반부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에서 덕혜의 변모를 만날 수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결혼한 일본인 남편과 헤어진 덕혜는 딸을 이정혜라고 부른다. 남편의 성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 성을 붙여준 것이다. 정신병원에 갇힌 뒤 덕혜는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따라 양덕혜라고 스스로를 부른다. 고향에 가고 싶은 의지와 애국심에서 비롯된 호칭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페미니즘의 원형질이 엿보이는 대목들이다. 어렵게 귀국한 덕혜를 김포공항에서 눈물로 맞아주는 이들은 나이든 궁녀들이다. 로맨스 시대극이라 해도 될 정도로 김정한과 덕혜의 애절한 관계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인데 정작 이 장면에서 눈시울이 가장 뜨거워진다. 모셔진 분과 모시던 사람들의 단순한 재회가 아닌 자매애로 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망국의 황녀가 보낸 불우한 삶 너머를 보는 재미가 ‘덕혜옹주’의 감상 포인트 아닐까.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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