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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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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맙다, 친구야

입력
2016.09.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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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서당에서 아이들 수양 교재로 쓰던 명심보감은 모두 19편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 하나가 ‘교우(交友)’인데,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 가르치는 내용이다. 좋은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명심보감이 주는 힌트는 이런 것이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많으나 마음 알아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술이나 음식을 함께 할 때에는 형, 동생 하는 친구가 많지만 급하고 어려운 일 당했을 때 도와줄 친구는 없는 법’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 마음으로 통해 사심 없이 자기만을 믿고 도와 줄 사람이 좋은 친구라는 말이다. 그 덕목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의리’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무색하게도 요즘 의리 없는 친구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스폰서 검사’ 얘기다. 과거 유력 정치인을 장인으로 둔 한 검사는 사업가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오늘 저녁 XXX 갈 거야?” “나 8시30분까지 간다. 와라 친구야” “어제 이야기한대로 내게 빌려주는 걸로 하고…도와주라 친구, 나중 개업하면 이자 포함 곧바로 갚을 테니” “출근해서 바로 보내고 톡 줄께. 5백 보냈다 내 전용계좌에서 입금자는 그냥 회사이름으로 했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구”. 언론을 통해 공개된 대화를 보면 둘은 술집에 같이 다니고 급히 돈이 필요하다면 선뜻 보내주는 사이였다. 그러니 “친구야 어제 반가웠다 ㅋㅋ 고맙구” “고마우이 친구”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 관계는 사업가 친구가 사기ㆍ횡령 혐의로 검찰에 붙잡히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사업가는 검사 친구가 자신을 구제해주길 바랐지만 쉽지 않았고, 검사는 친구가 조사 받으면서 자신과의 관계를 털어놓을 게 겁 났던 모양이다. 대화가 험악해진다. “봐봐 너는 친구를 못 믿어. 한 번이라도 요만큼이라도 한 거 있냐” “너 그거 들고 어디 내면 XXX고 뭐고 콘트롤 안되고, 대검에서 감찰하라고 하면 너도 구속되고, 나도 사표 내고, 어디 가서 자살한다 진짜” “나도 죽을 거야” “너 잘 들어. 29년 30년 공동운명체.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사람은 나” “어디서 뭘 만나고 왜 바보 같은 짓을 해. 노력하는 것. 누구 죽는 걸 봐야겠어 진짜.” “나 죽고 너 죽고 똑같이 죽는 거야.”

또 다른 ‘스폰서 검사’와 친구의 의리도 매한가지다. 엊그제 재판에서 기업가 친구를 둔 검사 쪽에서는 그 동안 받은 주식이며 고급 승용차가 “대학 때부터 호연지기를 키운 단짝 친구로 각자 분야에 진출해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던 밀접한 사이에서 전개된 일련의 호의와 배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가 친구는 건넨 주식에 대해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며 사실상 뇌물이라고 시인해버렸다.

‘친구의 의리’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얼마 전까지 18세 이상 관람가 관객 동원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다. 물과 기름 같지만 고교 동창의 의리와 조폭 세계의 비정함을 잘 버무려낸 이 영화에서 ‘의리’와 ‘비정’의 절묘한 접점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고교 동창인 동수(장동건) 살인교사죄로 감옥살이 하는 준석(유오성)을 우등생이던 동창 상택(서태화)이 면회하는 장면이다.

“상택아 미안하다 친구로서 이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갖고” “아이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상택아 우리 10분밖에 없다 빨리 이야기하자” “그래 니 건강하재” “하모 봐라 건강하다 아이가 아부지는 우째 지내시노” “그래 니 만나러 온다고 아부지가 돈도 주시더라” “준석아 니 와 그랬노. 동수한테 미안해서 그랬나. 니 재판장에서 뭐 땜에 그랬노”(상택은 준석에게 혐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준석은 그러지 않았다) “쪽 팔리서” “뭐라고” “동수나 내나 둘 다 건달 아이가. 건달이 쪽 팔리면 안 될 거 아이가”. 이 나라 어떤 검사들은 어째 건달만도 못한 것 같다.

김범수 문화부장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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