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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알로이스 히틀러 (1.3)

입력
2018.01.03 04:4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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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가 1903년 오늘 숨졌다.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가 1903년 오늘 숨졌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광기를 설명하기 위해 불우한 성장기, 특히 폭군처럼 군림했다는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Alois Hitler, 1837.6.7~1903.1.3)와의 관계를 들추는 예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알로이스는, 모범적인 남편이나 아버지라 말할 순 없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특별히 형편 없는 인간이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 류의 접근은, 흉악한 범죄자 등 문제적 인간의 문제의 책임을 유ㆍ청소년기의 가정ㆍ성장환경에 과도하게 떠넘김으로써 이른바 ‘비정상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알로이스가 사생아이며 히틀러가 사생아의 아들이라고 알려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히틀러의 정적과 반나치 활동가들은 그의 출생의 비밀을 유대인 혈통 가능성과 함께 공개하며 조롱하곤 했다. 그에 따른 병적인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히틀러의 비인간적 만행, 특히 유대인에 대한 잔혹한 증오심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로이스의 생부는 명확하지 않다. 다섯 살이던 1842년 어머니 마리아 안나 시클그루버(Maria Anna Schicklgruber)와 결혼한 족보상의 아버지 요한 게오르그 히들러(Johann Georg Hiedler)가 친부라는 게 정설이다. 그는 10살 되던 해에 아버지의 형 요한 네포무크 히들러에게 맡겨져 성장했다는 점 때문에 그를 생부로 보는 이들이 있고, 결혼 전 어머니가 오스트리아의 한 유대인 부자(레오폴드 프란켄베르거)의 가정부로 일하며 그와 알로이스를 낳았다는 설도 있다. 둘 다 근거는 없다. 그는 39세 때 성을 시클그루버에서 히틀러로 개명했다. 히들러가 히틀러가 된 사연 역시 확인된 바 없지만, 서기의 실수라는 설이 있다.

알로이스는 구두수선공 도제로 일하다 독학으로 오스트리아 행정사무직 시험에 합격, 1855년 세관원이 된 뒤 67세로 숨질 때(아돌프 15세)까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가족을 부양했다. 그는 세 차례 결혼했고, 직계조카 뻘인 23세 연하 클라라 히틀러(1860~1907)와 세 번째 결혼으로 아돌프를 낳았다. 알로이스는 성실한 직장인이었지만 바람둥이였고, 억압적인 가장이었다. 화가가 되려던 아들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강권했고, 아들의 나태함과 예술가 기질을 못마땅하게 여겨 자주 폭행했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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