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사전동의 없이 무단 수색
"외교적 상례에 크게 어긋나" 지적
10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퇴원 기자회견을 앞두고 미 대사관 측이 사전동의 없이 임의로 취재진의 짐을 뒤지는 등 과도한 보안 조치를 해 빈축을 사고 있다.
기자회견 시작 1시간 30분 전인 낮 12시30분. 미 대사관 관계자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본관 6층 기자회견장 내에 남아 있는 취재진에게 “짐을 두고 모두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취재진 상당수가 점심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현장에 남아 있던 일부 기자들은 밖으로 나왔다. 곧 대사관 관계자들은 회견장 내 취재진 100여명의 개인 짐과 외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대사관 측은 한 기자의 가방 속 필통까지 뒤져 커터칼을 찾아냈고,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해당기자에게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보관하겠다며 가져갔다.
검색은 회견장 밖을 지키던 경찰 관계자가 “개인 소유 짐은 동의를 구한 뒤 검색해야 한다”고 말한 후에야 중지됐다. 자리를 비웠던 기자들이 돌아와 항의하며 적법 여부를 따지자 병원 측은 “대사관에서 이날 오전 보안 검색과 관련한 안내 이메일을 언론사들에게 보냈다”고 대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메일을 받은 언론사는 서너 곳에 불과했다.
미 대사관의 무단 검색은 외교적 상례에 크게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통상 미 대사관은 외교부 등 외교 경로를 통해 경호 요청을 하는데, 이날 검색은 외교부는 물론 현장 통제와 경호를 책임지는 경찰에도 아무런 통보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당초 미 대사관은 회견장 입구에 대형 금속탐지기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과도하다고 판단해 현장 진행 요원이 취재진과 병원 관계자의 몸수색을 하는 정도로 합의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이 당초 프레스룸으로 사용되던 병원 종합관 6층 교수회의실에서 본관 6층 세미나실로 변경된 것도 미 대사관의 갑작스러운 요청 탓이었다. 대사관 보안담당관실은 리퍼트 대사와 기자들 간 거리를 최소한 2m 이상 확보해 달라고 통보했고, 교수회의실은 이 런 요구에 부합하지 않자 회견장소를 바꾼 것이다. 한 진행 요원은 “VIP가 참석하는 행사에 여러 번 동원됐지만 이처럼 막무가내인 것은 처음 봤다”며 “피습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해도 미국 영토로 간주되는 대사관이나 대사관저도 아닌데 대사관 측 요구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미 대사관 공보실 측은 “검색을 진행한 사람들은 미 대사관 직원이 맞다”면서도 “검색은 보안과 관련된 문제라 정확한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병원 내ㆍ외부에는 경찰 병력이 400여명이 배치됐으며 리퍼트 대사가 병원을 빠져나올 때는 평소보다 많은 경호원 20여명이 따라 붙었다. 리퍼트 대사가 탄 차량은 서울경찰청 소속 오토바이 4대와 경호차 3대의 호위를 받았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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