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민승 기자

등록 : 2017.03.15 14:44
수정 : 2017.07.04 15:33

[짜오! 베트남] 만난 지 19시간 만에… '번갯불' 베트남 원정결혼의 전말

<2>시댁의 나라에서 온 김서방

등록 : 2017.03.15 14:44
수정 : 2017.07.04 15:33

김기영 응웬 짱씨 부부가 결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민승 기자

“우리 일단 사귀기로 해요.”

“결혼은 언제하고요?

“서로 좀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뒤에 결정하면 안될까요?”

“얼마나요?”

“넉 달 정도?”

“…….”

“경남 통영에 시집가 살고 있는 우리 언니도 같이 한번 만나보고요.”

“…….” 지난 10일 오후 1시, 베트남 호찌민 시내 한 호텔 커피숍. 앳돼 보이는 여성을 마주보고 앉은 남자는 무척 갑갑해했다.

띄엄띄엄 전해지는 통역 때문에, 또 서울보다 30도 높은 기온 때문에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은 맞은 편에서 ‘기대했던 답’을 주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교제 넉 달 동안 부담해야 할 일체의 비용도 걱정이었다. ‘소개팅’을 할 심산이었다면 애당초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 만남은 40분만에 끝났다. 전날 경북 봉화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다시 인천에서 5시간을 날아온 김기영(42ㆍ가명)씨는 “한국사람 외모인 그 여성을 미리 점 찍어놓고 왔다”며 “아쉽지만 2차 맞선에 기대를 걸어볼 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살다 죽을 순 없다”

속성 결혼, 번갯불 결혼으로 불리는 베트남 원정 결혼. 김씨는 자신이 이런 결혼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애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도망갔다는 이웃 마을의 베트남댁 이야기에서부터 소통이 안돼 다툼이 잦다, 돈으로 한 결혼으로 잘 될 수 없는 조합 등등 세상의 곱지 못한 시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사업상 이유로 섰던 보증이 잘못된 게 결정타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용산전자상가서 잘 나가던 ‘김 사장’은 그간 이룬 것들을 하루 아침에 날려버리고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있던 부하 직원도 떠나 보냈다. 재기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갚아야 할 돈이 발목을 잡았다. “모두 내려 놓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봉화로 내려와 소 키우는 부모님 일을 도우면서 개인파산, 회생 절차를 거쳐 빚의 족쇄는 걷어냈다.

서울서 내려온 그는 맞선 보는 족족 퇴짜 신세였다. 너무 솔직하게 ‘망했다’고 했기 때문인지, 소 먹이는 일이 시원찮아 보였기 때문인지, 작은 키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이렇게 살다 늙어 죽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어른들한테 더 늦기 전에 손주를 안겨 드리고픈 생각도 있었다.

서너 시간 휴식한 뒤 이어 마련된 2차 맞선. 다소 긴장한 표정의 응웬 쨩(26ㆍ가명)씨가 마주 앉았다. 그녀는 의류 봉제공장에서 일했으며 석 달 전 한국에 시집가기로 마음 먹으면서 일을 그만뒀다. 그 바람에 체중도 늘었다고 했다. 어머니(46)와 아버지(47)는 호찌민에서 3시간 가량 떨어진 메콩델타 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응웬씨 측 중개인은 “농부나 오토바이수리공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 한국행을 결심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1시간 만나고, 19시간 뒤 결혼식

서로에 대한 소개와 관심사들이 통역을 통해 전달된 뒤 둘은 결혼하기로 합의했다. 만난 지 1시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몇 년을 사귀고 결혼해도 싸우고 원수가 돼 갈라서는데, 잘 몰라도 서로 맞춰가면서 살면 되지 않겠어요?” 베트남어도 열심히 배우겠다는 김씨 목소리에선 비장함도 느껴졌다. 이 자리에는 양측 중개업체 관계자와 통역, 김씨의 대부 등 4명이 참석했다.

응웬씨는 김씨 어디가 제일 좋았느냐는 물음에 그냥 웃기만 했다. 김씨는 “한국어 공부에 대한 열의가 강했고 내조를 확실히 해 줄 것 같다”며 “수줍은 듯 웃는 모습과 복스러운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 측 중개업체 관계자는 “2014년 한국에 국제결혼업법이 생긴 뒤 남자의 소득, 범죄ㆍ약물중독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이 강화됐다”며 “신랑들 수준이 월등히 높아졌다”고 전했다.

이튿날 정오 결혼식에 앞서 호찌민 시내 테마공원 담센파크에서 진행된 웨딩앨범 촬영. 밤 늦도록 카카오톡을 깔고 사진을 주고 받으며 번역기를 통해 대화를 나눈 덕분인지 두 번째 만남 치고는 꽤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연출됐다. 만난 지 17시간 정도 경과한 때다. 얼굴의 땀을 닦아주는가 하면 자연스럽게 상대의 허리 위로 손이 올라갔다. 사진사는 “참 잘 어울린다. 이들의 행복을 위해 정성껏 셔터를 누르고 있다”며 웃었다. 한국 총영사관에 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필요한 사진이기도 하다.

공원 인근의 결혼식장. 별안간 치르는 결혼식에 하객이 많을 리 없었다.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식홀이었지만 참석자는 맞선 중개업체 관계자와 통역을 다 합쳐도 신랑 측 3명, 신부측 11명에 그쳤다. 주례는 없고 사회자가 반지 증정, 케이크 커팅 중간 중간에 공연을 끼워 넣는 식으로 진행됐다. 통역은 “2박 3일식 결혼 잔치를 하면서 양가가 더욱 친해지는데, 약식 결혼식이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베트남 노래와 한국 노래 ‘네 박자’, ‘옥경이’, ‘남행열차’를 부르는 사이 신부 측 테이블에선 쉴새 없이 “머 하이 빠 요!(하나둘셋 건배!)”가 터져 나왔다. 장인은 옆에 앉은 사위를 아래 위로 훑으며 틈틈이 잔을 채웠고, 사위가 받아 넘길 때마다 박수가 쏟아졌다. 됴이막(결혼식) 아오자이를 걸친 신부는 결혼식 내내 웃었다. 식사까지 2시간 반이 걸렸다.

한국에는 7개월 뒤 정착

시내 호텔에서 첫날밤을 치른 뒤 12일 이들이 당일치기로 찾은 신혼여행지는 호찌민 시내에서 1시간 반 거리의 미토. 1인당 19만8,000동(약 1만원)짜리 여행상품으로, 왕복 교통비와 점심 식사, 간식, 원주민 노래ㆍ악기 연주 감상, 마차ㆍ쪽배 체험 등이 포함됐다. 공식 일정은 그 이튿날 베트남 당국에 혼인신고와 사이공강 유람선 투어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유람선을 처음 타본다는 신부는 “너무 낭만적인 밤”이라고 했고, 기분이 좋을 때마다 신랑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결혼식까지 치렀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정식 부부생활을 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다. 신부는 4개월 동안 한국어 공부에 매달려 한국어능력평가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2개월 뒤 신랑은 신부가 있는 지방 관청에 들러 인터뷰도 해야 한다. 신부의 최종 한국행 비자가 나오기까지 보통 7개월이 걸린다. 신랑은 “남들 색안경 끼고 보는 결혼식 주인공이 됐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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