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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걱정되는데 계속 건설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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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걱정되는데 계속 건설해야 하나

입력
2016.09.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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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딜레마’, 정부는 “기존 계획대로”

기상청은 21일 오전 11시 53분께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0㎞ 지역에서 규모 3.5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각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정의당 당직자들이 원전시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기상청은 21일 오전 11시 53분께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0㎞ 지역에서 규모 3.5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각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정의당 당직자들이 원전시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원자력 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

경주 5.8 지진으로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전력 수급에서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20%가 넘는 상황에서 당장 원자력발전소를 정지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진 발생 후 시민사회단체들은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 키우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에너지수급 사정을 감안할 때 원전을 축소하긴 힘들다는 입장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해 3월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설치돼 있는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HANARO)에 설비 보강 조치를 요구한 사실은 원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자로 외벽은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뎌야 하는데, 하나로는 외벽 전체 면적의 4.8%가 내진설계 기준에 미달하는 6.4까지만 견디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구나 당초 7,8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보강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진 기준이 6.5로 설계됐더라도 원전이 십수년 가동되는 과정에서 일부 노후화나 손상 등으로 기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특히 오래 가동한 원전의 내진 성능은 건설 초기와 달라졌을 수 있다”며 “공학적으로 적용된 내진설계 만큼 정확히 잘 견디는지를 이번 지진 발생지 인근 원전부터 시작해 전 원전의 구조물들을 차례로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단층이 유독 많이 분포하는 영남과 동해안 일대는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다. 경주 월성 원전 본부에는 월성 1~4호기와 신월성 1ㆍ2호기 등 총 6기가, 부산 고리 원전 본부에는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4호기 등 총 8기가 가동 중이다. 최근 건설이 허가된 신고리 5ㆍ6호기까지 치면 총 16기가 모이게 된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조사 결과 활성단층 존재가 확실할 경우 가동 중인 원전은 영구 정지하고, 건설 예정인 원전은 계획을 취소하는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한 방안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단층이 발견된 뒤 훔볼트 베이 원전은 건설을 중단했고, 산 오노프리 원전은 폐쇄했다. 캘리포니아주에 마지막 남은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도 2025년까지 점진적으로 영구정지하기로 결정됐다.

과거 국내 원자력 산업이 첫발을 뗄 때는 바다나 산업단지와 가까운 영남 일대가 최적의 입지로 꼽혔다. 생산된 전기를 공급하거나 가동에 필요한 냉각수를 끌어오는데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또 주민 기피시설인 원전의 특성상 추가 건설은 기존 부지에 추진하는 게 정책적으로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경주 5.8 지진으로 이 같은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넓은 갯벌 때문에 냉각수로 쓸 바닷물을 끌어오려면 해저에 관을 설치해야 하는 서해안이나 해마다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드는 남해안, 인구가 밀집해 있는 큰 강 주변 등이 많은 단층이 분포하는 영남 일대와 비교해 원전 부지로 더 적합할지 아닐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시점이다.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보다 원전 수를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이번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질 때 원전 6기가 점검 등을 이유로 가동을 멈췄는데도 전력 부족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발전 설비 중 원자력 비중을 10% 후반까지는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진 위험성을 감안해 원자력 정책 방향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당장 에너지 정책의 기본 틀을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원자력 확대가 골자인 7차 전력수급계획이 이미 확정돼 시행 중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함께 시행 중인 2차 에너지기본계획 역시 자연재해 등에 대한 대비 보다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에너지 가격 조정에 힘이 실려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날 “에너지 정책은 법적 절차에 따라 결정돼야 하는 만큼 현재로선 정해진 계획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부 국민들이 불안해한다고 해서 적법하게 만들어진 계획을 정부가 임의로 변경할 순 없다”며 “앞으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지진이나 단층과 관련한 원전 안전성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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