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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못믿어” 학교석면 팔 걷어붙인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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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못믿어” 학교석면 팔 걷어붙인 학부모

입력
2018.02.27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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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작업 뒤에도 잔재물 검출 등

안일한 대응에 학부모들 분통

“우리 아이 책상에 앉힐 수 없다”

모니터링단 구성ㆍ현장점검 나서

25일 오후 경기 원동초 학부모들이 오산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겨울방학 동안 석면해체공사를 끝낸 학교 내부의 석면 잔재물을 직접 채취하고 있다. 학부모 제공
25일 오후 경기 원동초 학부모들이 오산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겨울방학 동안 석면해체공사를 끝낸 학교 내부의 석면 잔재물을 직접 채취하고 있다. 학부모 제공

정부의 ‘겨울방학 학교 석면 특별관리 결과’가 발표된 25일 오후 경기 오산시 한 아파트상가에서는 인근 원동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새 학기를 코 앞에 둔 상황에서 원동초가 잔재물 검출 학교로 공식 발표되면서 학부모들이 긴급히 마련한 자리다. 30여명의 학부모들은 우선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장을 초청해 석면 교육을 받은 뒤, 일부는 원동초로 직접 찾아가 석면 잔재물을 채취했다. 학부모들은 방진복을 입고 학교 안팎 곳곳의 먼지를 물티슈로 닦고 부스러기를 비닐팩에 담는 방식으로 31개 시료를 채취해 사설 분석 업체에 맡겨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학부모 모니터링단을 주도해 온 원동초 4학년 학부모 박혜진(38)씨는 26일 “정부만 믿고 이대로 아이를 책상 앞에 앉힐 순 없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학교가 방학 기간 석면해체작업을 진행한다고 공지한 이후 모니터링단 구성부터 현장 방문, 공사 후 잔재물 점검 등이 모두 학부모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박씨는 “환경부나 교육부, 교육청 등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으면 학교가 잔재물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자녀의 새 학기 시작을 일주일 여 남겨두고 학부모들이 정부의 안일한 학교 석면 대응 에 잔뜩 뿔이 났다. 이번 겨울방학에 석면해체 공사를 한 1,227개 학교 중 석면 조각 및 부스러기가 검출된 곳이 53곳. 이마저도 공사 진행 학교 가운데 201개(16.4%)만 뽑아 표본 조사한 결과와 시민단체가 지적한 10개 학교만을 포함한 숫자라 전수조사를 한다면 그 수가 훨씬 늘어날 공산이 크다. 학부모들이 일일이 감시하지 않으면 개학 후 아이들이 석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는 구조다.

이대로 정부에만 맡길 수 없다고 여긴 학부모들은 직접 석면 다루는 법을 공부하고, 점검단을 마련하는 등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경기 화성 동양초 학부모 최모(34)씨는 “서울 인헌초는 개학까지 연기했다는데 우리 학교는 너무 조용해서 학부모들끼리라도 대응반을 꾸려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온라인 맘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우리 학교 석면 공사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개학 전 함께 학교에 석면 문의 방문 하실 학부모를 찾는다’는 글이 잇따라 게재되고 있다.

이처럼 학부모들이 정부 대신 학교 석면해체공사 현장의 주요 감시자가 된 건 오래 전부터다. 지난해 8월 석면 감시단 활동을 했던 학부모들이 경기 과천시 관문초 등 관리 부실 학교들을 꾸준히 고발, 한 달 만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관계 부처의 늑장 대처를 질타한 후 교육부와 환경부가 부랴부랴 “공사 학교의 석면 농도와 잔재물 검사를 실시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학교 석면 잔재물 검사에 참여한 민ㆍ관합동 조사단 총 787명 중 32.4%(255명)도 학부모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잔재물 결과 발표 후 교육당국이 내놓은 ‘학교 대청소’ 계획에도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 특히 대청소 후에도 전수조사로 재점검을 하지 않고 또다시 표본조사를 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거세다. 원동초 학부모 김모(36)씨는 “정부 발표 이후에도 작업자들이 석면 분진이 남아있는 구조물이나 집기를 보양작업 없이 학교 밖으로 제거하는 등 안전의식이 전혀 없는데 대청소를 한다고 마음이 놓이겠느냐”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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