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김희애 “자신감에 덥석 출연…촬영 마치고 펑펑 울어”

알림

김희애 “자신감에 덥석 출연…촬영 마치고 펑펑 울어”

입력
2018.06.24 16:20
수정
2018.06.24 19:30
25면
0 0
김희애는 “두 아들은 엄마가 TV에 나오는 걸 아직도 어색해한다”고 웃으며 “배우가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선 평범한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희애는 “두 아들은 엄마가 TV에 나오는 걸 아직도 어색해한다”고 웃으며 “배우가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선 평범한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희애(51)는 영화 ‘허스토리’ 촬영을 모두 마치고 분장실에 들어와 펑펑 울었다. 배우 생활 35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 직전까지 동료 배우, 스태프와 웃으며 기념사진도 찍었는데, 긴장이 탁 풀리자 시원함과 개운함과 알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뒤범벅돼 쏟아져 나왔다.

“내심 힘들었던가 봐요. 솔직히 늘 하던 대로 연기해도 되는 작품도 간혹 있는데, 이 영화에선 절대 그럴 수 없었어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김희애는 여러 번 “힘들었다”고 말했고, 그보다 더 여러 번 “뜻 깊었다”고 되뇌었다.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는 일본군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1992년부터 6년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여 처음으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다. 김희애는 사비를 털어 소송단을 이끈 부산 지역 사업가 문정숙 역을 맡았다. 김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회장이 실제 모델이다.

김희애는 민규동 감독에게 시나리오 받았을 때만 해도 “뒷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가 다룬 주제에 대한 “사명감이나 부담감도 고민하지 않았다”. “약자 중의 약자인 일본군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법정에서 쩌렁쩌렁하게 잘못을 꾸짖고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문정숙이 책에서 보던 의인이 아니라 저와 비슷한 보통사람이라는 것도 끌렸고요. 제대로 임자를 찾아왔구나 싶었죠. 그래서 출연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어요. 후폭풍을 겪을 줄은 짐작도 못했어요(웃음).”

촬영이 시작되면서 자신감은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그 자리엔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은 이 일을 여태 모르고 살았다”는 부끄러움이 들어섰다. 카메라 앞에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했고, 최대한 나를 지우고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어요. 오로지 문정숙만 바라봤어요. 연기 변신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어요.”

김희애(왼쪽)가 연기한 사업가 문정숙의 실제 모델은 올해 91세인 김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회장이다. 관부재판에 참여한 일본군 피해자 10명은 지난해 4월 별세한 이순덕 할머니를 끝으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NEW 제공
김희애(왼쪽)가 연기한 사업가 문정숙의 실제 모델은 올해 91세인 김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회장이다. 관부재판에 참여한 일본군 피해자 10명은 지난해 4월 별세한 이순덕 할머니를 끝으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NEW 제공

문정숙은 같이 울어주는 대신 앞장서 싸우는 방식으로 일본군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는다. 문정숙이 할머니들의 법정 증언을 일본어로 통역하며 분노로 몸을 떨 때 극장 안엔 숨소리마저 잦아든다. 김희애는 “힘 없는 약자가 당당하게 자기 힘으로 일어서는 모습을 관객들이 봐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 촬영 시작 3개월 전부터 녹음기를 끼고 살았다. 듣고 외우고를 반복했다. 개인 교사에게도 배웠다. “연기는 진심이어야 하는데, 말을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잖아요.” 얼마나 달달 외웠으면 촬영 끝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긴 일본어 대사를 읊을 수 있을 정도다.

“사투리 선생님뿐 아니라 그분의 부모님, 이모님, 욕쟁이 친구들과도 통화하면서 도움을 받았어요. 그렇게 얻은 모든 것을 연기에 우려내려고 했어요. 이렇게까지 저를 쏟아 부은 적이 있었던가 싶어요. 이 영화로 제가 확 달라졌다고는 아직 말하기 어렵지만,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아요.”

김희애는 “‘허스토리’는 배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라 힘주어 말했다. “이런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고도 했다. “앞으로도 역할이 작더라도 참여하는 자체로 큰 기쁨을 주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고 바랐다.

데뷔 이래 줄곧 최정상 자리를 지켜 왔음에도 배우로서 꿈은 소박하다. “배우는 선택 받는 직업이에요. 누군가 선택해 주면 열심히 연기하는 거죠. 작품을 까다롭게 가리지는 않아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작품만 아니라면요. 남자 역할도 준비돼 있다니까요(웃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