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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인천AG 경기장의 환호와 대북 삐라

입력
2014.09.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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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역도선수들의 세계신기록 행진 선전

최근 北 경제사정 호전과 무관치 않을 것

대북단체, 북 개방에 걸림돌 되지 말아야

22일 달빛축제정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역도 남자 69kg급 경기에서 북한의 김명혁이 인상 1차 시기에서 152kg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달빛축제정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역도 남자 69kg급 경기에서 북한의 김명혁이 인상 1차 시기에서 152kg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역도 선수들이 놀라운 기량을 뽐내고 있다. 20일 엄윤철이 56㎏급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 21일 김은국이 62㎏급에서 역시 세계신기록으로, 22일에는 여자 역도 58㎏급에서 리정화가 북한에 금메달을 안겼다. 21일까지 나온 이번 대회 세계신기록 6개 중 4개를 북한 역도 선수들이 작성했다. 북한은 2012년 런던하계올림픽 역도에서만 금메달 3개를 수확했다. 우리 양궁이 세계 최강이듯 북한은 역도에서 세계 최강 위치를 굳혀가는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 가렸지만 20일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U_16)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북한은‘제2의 메시’라는 남한의 이승우(16ㆍ바르셀로나 유스) 열풍을 잠재우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우리 U_16대표팀은 이승우 장결희 등 해외유학파가 주축이지만 북한 대표팀에도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배운 해외유학파가 6명이나 있다. 김정은 정권이 스포츠 강국을 목표로 적극 투자한 결실 중 하나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과 취재 기자단은 자신감에 차 있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보도다. 머리 염색을 한 여자 선수들이 적지 않고, 무리 지어 따로 움직이던 예전과는 달리 북한 기자들은 식당 등에서 자연스럽게 타국 기자들과 어울린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김정은 체제 들어 다소 경제사정이 나아지면서 북한 내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성 싶다.

역도 외에 남자 기계체조, 여자 싱크로나이즈 등 인천아시안게임 여러 경기장에서 북한 선수들의 선전에 환호성이 터지고 있던 21일 오전. 대북민간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 10여명은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3대 세습 반대 등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전단지 20만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측 산하로 날려보냈다.

정부가 자제를 요청하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생계에 타격을 입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반대해도 소용 없었다. 그들은 “북한의 2,000만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로 어느 누구든 보내라 말라 할 권리는 없다”며 기상상황만 좋다면 언제든 전단살포를 강행한다. 전단지와 함께 보내는 DVD, USB, 그리고 미화 1달러짜리 몇 백장을 계속 북쪽으로 보내면 북한의 세습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신념에 찬 행동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는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 권력승계 후 3년간 북한 경제는 1% 가량 성장했다. 마이너스 성장이 흔한 북한 경제에서 주목 받을 만한 수치다. 대외교역이 늘고 식량 사정도 호전됐다는 보도가 많다. 남북경협이 막혀 있고 대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지만 대러 무역 확대, 북일 관계 호전에 따른 일본의 대북 독자제재 완화 등 대외적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민주화운동 단체들도 이제 전단지 살포라는 원시적 방법을 좀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단지 살포는 북한의 도발 원점 타격 위협에 따른 군사적 긴장 고조로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고, 바람방향 기상상황에 근본적 제약을 받는다. 과거 북한이 남쪽으로 험악한 삐라를 날려보냈을 때 우리도 경험 해봤지만 별 효과가 없다. 먹고 사는 게 좀 나아지는 듯 하고, 자기네 선수들이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금메달이다, 우승컵이다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북한민주화운동 단체들도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더 효과적으로 전단지를 풍선에 실어 날려 보내기 위해 기상학 공부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1980~90년대 운동권 논리에 갇혀 공부는 하지 않은 채 선명성만 고집해 민주개혁세력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남한 야권의 강경세력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김정은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북한주민의 생활과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외부와의 접촉면 확대, 즉 개방이다. 김정은 체제는 현재 여러 이유로 외부 세계와의 접촉 확대를 시도 중이다. 북한민주화운동 단체들의 전단지 살포와 같은 방식은 김정은 체제 내부 강경세력들에게 개방 위험을 주장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지금 누가 김정은 체제의 변화와 북한주민의 생활 및 인권향상에 걸림돌인지 자명하지 않은가.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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