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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입력
2017.06.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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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의외로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고 필수적인 생활의 일부가, 아니 핵심이 되어 있지만,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없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겨우 20년 남짓한 시간에 일어난 순식간의 변화. 한시도 자신의 모바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마치 핸드폰과 산 지 100년은 된 듯한 기분이다. 대충 어딘가에 ‘도착해서 전화해’가 아니라, 약속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정하고 별다른 연락 없이 이를 지키던 시대가 있었음은 너무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내비게이션 없이 어딘가를 찾아가던 때도, 길을 걸으며 핸드폰 대신 앞을 바라보던 시절도, 귓구멍에 이어폰 대신 공기가 드나들던 과거도 말이다.

지나간 세월을 그저 한탄하기 위해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환경의 특정 조건들이 변화하였을 때 초래되는 결과,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논하기 위함이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보는 이도 있겠지만, 이에 수반되는 삶의 질적, 구조적, 정신적 변화를 감안하면 이대로도 좋은가 질문해야 마땅하다. 가령 핸드폰의 예로 돌아가 보자.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연결의 직접성이다. 더 이상 뭘 거치지 않고도 누군가와 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편의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로 인한 부담감, 난처함이 있다. 아직 친하지도 않은데 불쑥 연결되어 상대해야 하는 상황, 휴일에도 언제든지 일로 불려나갈 가능성의 폐해. 직접적인 연결성은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외부에 의해 침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 가지를 위해 할애한 오붓하고 고유한 시간의 상실, 이것을 우리는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직접적인 연결 덕분에 인간 사이의 헤어짐도 더더욱 어려워졌다. 누가 받을지 몰랐던 집 전화는 바로 그 간접성으로 인한 연락의 ‘장벽’ 덕분에 마음정리도 한편 수월했던 측면이 있다. 모두와 문자 하나, 카톡 하나 발송 거리에 있는 현 상황에서는 이별도 더 이상 진짜 이별이 아니다.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연 환경에 우리가 일으킨 변화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결과를 수반한다. 가령 도심 주변의 산이나 숲을 예로 들어보자. 이 공간들은 사람이 드나들더라도 기본적으로 자연 영역이라는 점에서 도심 내부의 공원녹지와는 구별된다. 즉, 도시인이 마음먹으면 찾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진짜’ 자연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가봤을 때 나를 맞이하는 광경은? 산은 산이되 등산객의 편의를 위한 ‘시설’로 전락한 산, 숲은 숲이되 놀러 나온 이들의 위락을 위한 ‘유원지’로 둔갑한 숲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조경회사의 영업현장이자 지자체의 사업부지로서의 자연이다. 지나치게 넓고 촘촘하게 낸 길과 광범위하게 포장된 표면들, 원래 있던 산림을 굳이 제거하고 심은 관상 종과 암석들, 산 중턱까지 침투한 흉물스런 운동기구, 억지로 만든 인공 연못과 물길, 휴식공간을 위해 깔끔하게 식생을 걷어낸 수많은 공간들.

이 다듬어지고 가공된 ‘방문자 맞춤형’ 자연은 미안하지만 자연이 아니다. 숲으로부터 그늘과 정화된 공기와 피톤치드 등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전형적인 추출적(extractive) 세계관으로 ‘이용하는’ 자연일 뿐이다. 이런 산과 숲에 익숙해진 이에게 자연은 편히 누려야 할 대상이지 손대는 것을 삼가야 하는 보전의 대상이 아니다. 싹 걷어낸 피크닉장이 친숙하다면 숲의 빽빽한 덤불과 벌레들 같은 ‘불편한’ 존재들이 원래 그곳의 주인임을 어찌 알까? 숲을 내 안방처럼 만드는 것은 숲을 길들이는 일이다. 자연에 쉬이 다가가기 위한 장치라고 마련해놓은 것이, 오히려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장치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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