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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피 흘리는 여신상

입력
2017.02.0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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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로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해 인도하려 했을 때 미국 사회가 보인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여신상 받침대를 건립하겠다 해 놓고도 비용 마련에 소극적이었으며 의회의 여신상 인도 승인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부 종교인은 여신상을 일종의 우상으로 생각해 미국에서 맹목적 우상 숭배가 일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흑인이 권리 찾기에 나선 남부에서는 쇠사슬을 풀어 헤치는 여신상의 형상이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흑인의 투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백인 기독교계의 반발이 거셌다.

▦ 그러나 언제부턴가 자유의 여신상은 이민자를 맞아 주는 따뜻한 존재가 됐다. 그렇게 된 데 ‘새로운 거상’이라는 시의 영향이 컸다. 유대계 시인 에마 라자러스는 이 시에서 “…그녀의 이름은 망명자의 어머니…너의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나에게 보내다오”라고 썼다. 19세기 말 남부와 동부 유럽의 가난하고 박해받던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화물선을 개조한 임시 여객선에 몸을 실은 다음 전염병까지 떠도는 불결한 선내 환경 속에서 힘든 항해를 마친 뒤 뉴욕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맞아 준 게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 지금 자유의 여신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미국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미국의 상징이자 관광 명소다. 그런 여신상의 목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른 그림이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표지에 실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것을 풍자한 것인데 트럼프 이민 정책이 민주주의를 참수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는 게 그린 이의 설명이다. 그림이 섬뜩하고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범죄를 연상시킨다는 반론이 있지만 트럼프 정책에 대한 반발이 그만큼 거센 것만은 분명하다.

▦ 한 여성이 자유의 여신상으로 분장해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라는 글을 들고 뉴욕 JFK공항에서 입국자를 환영하는 또 다른 사진도 보인다. 내용으로 보아 미국 법원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제동을 건 뒤 촬영한 것 같다. 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항고마저 기각했다. 제동을 건 제임스 로바트 판사는 공화당 성향의 보수 인물이지만 불우 어린이를 입양하고 난민과 흑인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겨 ‘따뜻한 보수’라는 소리를 듣는다. 권력과 맞서고 약자를 편드는 ‘따뜻한 보수’가 많았다면 한국 사회도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박광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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