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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의 사투” 경주박물관, 8.3강진에도 국보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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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의 사투” 경주박물관, 8.3강진에도 국보 지킨다

입력
2017.11.21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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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줄·모래주머니 등 대신

세계 최강 면진장치 설치

이차돈순교비, 금동여래입상 등

국보급 문화재 지진공포에서 해방

국립경주박물관이 20일 신라미술관 안에 규모 8.3의 지진도 견딜 수 있는 면진장치 부속품을 '금강역사' 앞에 펼쳐두고 있다. 박물관은 조립이 끝나는 21일 면진장치를 설치한다. 경주=김성웅 기자 ksw@hankookilbo.com
국립경주박물관이 20일 신라미술관 안에 규모 8.3의 지진도 견딜 수 있는 면진장치 부속품을 '금강역사' 앞에 펼쳐두고 있다. 박물관은 조립이 끝나는 21일 면진장치를 설치한다. 경주=김성웅 기자 ksw@hankookilbo.com

국립경주박물관이 규모 8.3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면진시설을 국보급 문화재에 세계 첫 도입한다. 지난해 울산 지진 후 낚싯줄과 모래주머니부터 시작된 아날로그 방식의 ‘지진과의 전쟁’이 경주와 포항 지진을 거치면서 디지털 기기를 만나 어떤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공을 갖추게 됐다.

내진 시설이 각종 보강시설 확보를 통해 건물의 저항력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면진 시설은 지진에너지를 흡수해 구조물에 전달되는 충격을 감소시키는 개념이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도 내진 설계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인 면진 설계를 도입한 건물이 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 9월 한국SGS 동탄시험소에서 석굴암 본존불 3분의 1 크기의 석조 불상에 대해 면진장치를 설치하고 지진파를 견디는지 시험을 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 9월 한국SGS 동탄시험소에서 석굴암 본존불 3분의 1 크기의 석조 불상에 대해 면진장치를 설치하고 지진파를 견디는지 시험을 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일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미술관에서는 면진대 부속품 조립작업이 한창이었다. 받침대 고정작업이 끝나는 21일에는 금강역사와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배가 먼저 면진장치에 안착한다.

길이 5.9m 높이 0.35m, 선미 너비 1.5m인 안압지 배의 경우 받침대와 배를 리프트로 조심스럽게 들어올린 후 아래에 면진장치를 설치해 지진파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신라미술관과 월지관, 신라역사관 안팎에서는 국보 28호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과 이차돈순교비 등 외부에 노출된 중ㆍ대형 문화재 38점과 감은사 사리기 등 부장품 12점이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다.

박물관 측은 이를 위해 올 초부터 6개월간 국내 면진 시설 전문 C업체와 함께 문화재에 적합한 면진장치를 개발했고 9월 문화재와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입상과 좌상, 동종 형태의 석재물에 대해 세 방향에서 동시에 규모 8.3의 지진파 충격을 주는 시뮬레이션을 20회나 통과했다. 규모 8.3은 지난 해 규모 5.8 경주지진보다 2,000배 이상 센 것으로 사실상 건물 완파수준이다.

C업체의 이 면진장치는 올 2월 현존 최강의 지진 세기를 시험하는 미국 ‘텔코디아 존 4’ 시험을 세계 두 번째로 통과한 순수 국산품이다. 중소기업청 성능인증도 획득한 이 장치는 공항과 한국전력, 병원, 은행, 발전소 등 다양한 장소에 적용됐으나 문화재로는 이번이 세계 처음이다.

전효수(37)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인간문화재 드잡이들이 전문 기술자들과 함께 20일 준비작업을 거쳐 21일부터 본격적으로 면진 시설을 설치하면 지진 분야에서는 경주박물관이 최강의 문화재 시설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보강 공사를 하기 전의 국립경주박물관 내 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 전경.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지진보강 공사를 하기 전의 국립경주박물관 내 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 전경.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립경주박물관이 올 초 기둥과 보 설치 등 지진보강 공사를 마친 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 전경.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립경주박물관이 올 초 기둥과 보 설치 등 지진보강 공사를 마친 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 전경.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경주박물관이 지진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지난해 7월5일 규모 5.0의 울산 지진이 계기가 됐다. 박물관 측은 같은해 7월11일부터 8월22일까지 천마총 출토 금관과 석검, 금동불상 등 전시품을 투명 낚싯줄로 꽁꽁 묶기 시작했다. 기마인물상과 토우항아리 안에는 금강사 모래주머니를 넣고 실리콘으로 토기 아래를 붙였다. 수작업으로 500여점을 고정했더니 9월12일 규모 5.8의 경주 지진에도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내진 작업은 가속도를 냈다. 같은해 10월까지 유물 7,000여점을 내진 보강했다. 박물관 측은 또 미국 캘리포니아과 일본 고베 등 지진 다발지역의 대응체계를 현장 답사했고, 박물관 내 월지관은 내진성능시험에서 최상위 등급을 받았다.

올 초에는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도 종각의 기둥과 보 보강작업이 마무리됐다. “경주 지진 때 종각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을 폐쇄회로(CC)TV로 보고 머리털이 섰다”는 박물관 측은 무게 18.9톤의 종이 지진으로 바닥에 떨어지는 불상사를 원천 차단했다. 박물관 측은 또 전시품 유리창에 두께 0.1㎜의 안전필름을 붙였고 다음달에는 면진 진열장도 별도로 제작해 설치한다.

포항 지진 때 박물관에 전달된 진도는 4.4로 측정됐지만 피해는 전혀 없었다. 박물관 측은 지난 8월 지진계도 자체 도입했다.

유병하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경주 지진 후 박물관에서 지진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매뉴얼로 제작했다”며 “선조의 귀중한 유물을 한 자리에 모은 경주박물관이 지진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주=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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