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가족만 걱정 했던 오빠,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스킵

입력
2018.03.13 04:40
26면
0 0

휠체어 컬링팀 이끄는 서순석

고교 졸업 후 생계전선 나왔지만

뺑소니 교통사고 당해 척수 장애

취업 안돼 좌절할 때 컬링 만나

캐나다 꺾었지만 독일에 분패 4승1패

한국 휠체어 컬링 대표팀 스킵 서순석(앞)이 12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 캐나다전에서 신중하고 투구를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한국 휠체어 컬링 대표팀 스킵 서순석(앞)이 12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 캐나다전에서 신중하고 투구를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연승 행진이 4경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스킵 서순석(47), 리드 방민자(56ㆍ여), 세컨드 차재관(46), 서드 정승원(60)과 이동하(45)로 구성된 한국은 12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예선 4차전에서 캐나다를 7-5로 눌렀지만, 저녁에 벌어진 독일과의 예선 5차전에서 3-4로 아쉽게 패했다. 비록 독일에게 졌지만 5경기에서 4승 1패를 거둔 한국은 4강 진출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회에서는 12개국이 풀 리그를 펼쳐 4위까지 준결승에 오른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의 스킵 김은정(28)은 ‘안경선배’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휠체어 컬링 팀 스킵 서순석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 전략가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꼽은 전세계 휠체어 컬링에서 주목할 5명 중 1명이다. 평소 온화하고 배려가 넘치지만 빙판에 서면 냉철한 전략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서순석은 어린 시절 육상, 줄넘기 등 운동에 만능이었다. 서순석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한 살 터울의 여동생 서현주씨 기억에 릴레이 계주의 마지막 주자는 늘 오빠였다. 서울 오산중학교에서 투수로 활약하던 서순석은 고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으로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그가 어머니와 여동생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동생 서씨는 “그 때부터 오빠는 나에게 곧 아빠였다”고 고마워했다. 1993년 오토바이로 출근을 하던 서순석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 장애를 입었다. 그는 사고를 당한 뒤에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걸 미안해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앉아서 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각종 자격증을 땄지만 취업의 벽은 높아 면접에서 늘 좌절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2009년 친구가 휠체어 컬링을 권유했고 10년 여 만에 세계가 주목하는 스킵으로 우뚝 섰다.

2014년 소치 패럴림픽에서 9위를 한 뒤 서순석은 평창만 보며 4년 간 절치부심했다. 휠체어를 타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장을 5km씩 달렸다. 동생 서씨는 “오빠 집에 가면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컬링 영상을 연구하는 오빠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순석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1월 핀란드 국제 오픈 은메달에 이어 지난 2월 스코틀랜드 브리티시컵에서 금메달을 따며 평창에서 메달 전망을 밝혔다.

세계최강 캐나다를 꺾은 뒤 활짝 웃으며 환호하는 휠체어 컬링 대표팀. 강릉=연합뉴스
세계최강 캐나다를 꺾은 뒤 활짝 웃으며 환호하는 휠체어 컬링 대표팀. 강릉=연합뉴스

서순석은 팀을 하나로 묶는 정신적 지주다. 고등학교 때부터 동고동락한 여자 컬링의 ‘팀 킴’과 달리 휠체어 컬링 팀은 각 포지션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를 모아 선발했다. 한국 선수들은 5명의 성(姓)이 달라 ‘오성(五姓) 어벤져스’로 불리는데 또 다른 의미에서 ‘드림 팀’인 셈이다. 하지만 선수 각자가 자존심 강하고 철학도 달라 처음에 의견 다툼도 있었다. 서순석은 “싸울 때는 싸우고 풀 때 풀었다”고 웃은 뒤 “패럴림픽을 앞두고는 팀을 위해서만 집중하고, 속상한 일은 지우개로 싹싹 지워 모두 백지가 되기로 굳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서순석이 오른 팔을 번쩍 들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강릉=뉴스1
서순석이 오른 팔을 번쩍 들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강릉=뉴스1

서순석은 스킵이지만 마지막이 아닌 두 번째 순서로 샷을 던진다. 대신 라스트 샷은 서순석과 동갑 친구인 차재관(45)이 맡고 있다. 서순석은 “스킵이 늘 라스트 샷을 하라는 법은 없다”고 개의치 않아 했다. 서순석과 차재관은 캐나다전 마지막 8엔드에서 상대가 무섭게 추격해 올 때 환상적인 더블 테이크아웃(상대 스톤 두 개를 한 번에 쳐내는 일)을 한 번씩 성공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서순석은 “여자 팀이 평창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을 땄는데 저 자리를 우리 주려고 남겨놓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믿고 금메달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