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빈 기자

등록 : 2018.04.26 04:40
수정 : 2018.04.26 08:12

이재정 “비핵화 얻으려면 北에 ‘북미수교’ 담보로 줘야”

[남북 정상회담, 경험과 조언을 듣는다] <5ㆍ끝>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록 : 2018.04.26 04:40
수정 : 2018.04.2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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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ㆍ김정은 군사분계선에서

악수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

회담 내용만큼 퍼포먼스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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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종 목표는 체제 보장

북미수교는 일방적 선물 아닌

北 통제ㆍ관리할 수 있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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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ㆍ2차 회담과 달리 핵 문제 다뤄

외교라인, 주변국 공조 이끌어내

남북ㆍ북미회담 패키지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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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군사분계선 넘는 건

70년 분단 역사 한 풀어내는 장면

베를린 장벽 무너진 날에 비견될 것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23일 본보 인터뷰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남북이든 북미든 그동안 합의는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비핵화를 얻어내려면 북한에도 종잇장 이상의 담보를 줘야 할 텐데 결국 북미수교가 그 해답이다.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은 북미수교로 달려가는 길 위에 있는 셈이다.”

참여정부 마지막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재정(74) 경기교육감이 23일 본보 인터뷰에서 ‘남북ㆍ북미 정상회담 끝에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이 교육감은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 위해선 북한에도 체제보장에 대한 신뢰감을 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회의감 못지 않게 북한도 미국이 정말로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해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왔다”며 “한미가 비핵화에 기대를 걸고 있는 만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체제보장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2년 3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1.5트랙(반관반민) 회의에서 리용호 당시 외무성 부상이 했던 말을 소개했다. “리 부상이 존 케리 당시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미국 같이 큰 나라가 우리처럼 작고 가난한 나라를 못살게 굴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해야 이유다’라고 말했다. 남조선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처럼 자신들에 대해서도 핵우산을 제공한다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체제보장만 된다면 얼마든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었다는 뜻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를 기준을 묻자 이 교육감은 의외로 퍼포먼스를 꼽았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 위에서 악수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이라며 “회담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세계에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있음을 선언하는 퍼포먼스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경기 수원 경기교육청에서 1시간 10분간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사진 합성으로 표현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_다시 남북 정상이 마주앉게 됐다. 11년 전 남북 정상회담 참가자로서 감회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더욱이 이번엔 북쪽 지도자가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는다. 판문점을 가르고 있는 콘크리트 턱 하나를 넘는 데 7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것이다. 남북 분단이 2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2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종식 아닐까.”

_이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역사의 톱니바퀴와 한반도 문제 당사자들의 노력이 맞물리며 절묘한 역사가 만들어졌다. 일단 북한은 2013년 핵ㆍ경제 개발 병진노선을 앞세울 때부터 이미 오늘을 그렸을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핵 개발에 역량을 쏟아 부었다.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북한이 보여준 모습은 치밀하고 철저했다.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해빙 분위기를 띄웠다. 그런 뒤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 개발 중단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여기에 사업가 출신의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해결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왔고, 때를 놓치지 않고 문 대통령이 기막히게 다리를 놨다.”

_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과 다른 점이 있다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철저하게 국가정보원 중심으로 준비됐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은 국정원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실제 기획과 준비는 통일부가 다 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청와대 중심이다. 그 안에서 외교부 출신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중심을 잡고, 서훈 국정원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뒤를 받쳤다. 여기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힘을 보탰다. 일종의 연합군이랄까. 특히 그 연합군에 외교라인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_외교라인 참여가 왜 중요한가.

“1,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남과 북이 주체였다. 그땐 북핵 문제가 다뤄지지 않아 주변국과 일일이 협의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이번 정상회담에선 비핵화 문제가 다뤄진다. 미국과 손발을 맞춰야 하고, 중국, 일본과도 의견을 교환해야 했다.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다녀와 미국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가지 않았나. 주변국과의 공조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든 것이다. 과거엔 없던 형태다.”

_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덕도 있다고 보나.

“유효했다. 김 위원장도 제재를 맞으면서 더 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핵 개발을 서둘렀고, 이제 핵 무기를 완성했으니, 경제에 올인 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경제발전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대화로 나온 것이다.”

_북한이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대화로 나왔다는 말인가.

“아니다. 제재이완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정상국가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격 대상에서 벗어나 미국의 대화 상대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결국 북미수교다. 평양에 자기 나라 대사관이 있는데, 미국이 어떻게 북한을 공격할 생각을 할 수 있겠나. 북미수교를 통해 체제를 보장받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겠다는 게 북한의 최종적 목표다. 이미 북한 태도에서 그 간절함이 보이고 있다.”

_어떤 간절함이 보이나.

“김 위원장이 외교석상에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만 해도 가볍게 볼 게 아니다. 김 위원장의 방중 길에도 리설주가 함께 갔고, 남측 대북특사단의 평양 방문 만찬에도 리설주가 나왔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 때는 없었던 일이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가 이미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_북미수교는 언제 가능할까.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 아닐까.

“꼭 선(先) 비핵화 후(後) 북미수교 순으로 볼 필요는 없다. 대북 체제보장을 비핵화로 가도록 하는 장치로 인식해야 한다.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들어왔다 치자. 북한이 비핵화에 소극적 모습을 보일 경우 미국은 대사관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 이는 대북 군사타격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고 북한으로선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이다. 북미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비핵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미수교가 북한에 대한 일방적 선물이라고 하는데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북한을 통제ㆍ관리할 수 있는 장치로 봐야 한다. 또 북한에 미국 대사관이 있어야 비핵화 과정을 직접 감시하고 압박할 수 있지 않겠나.”

_이번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올 가시적 성과는.

“비핵화 전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에서 원샷으로 하면 좋겠지만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실하게 받아놓는 것이 중요하고, 그 출발점이 종전선언이다. 종전선언이 없으면 핵 폐기 명분도 없는 것이다. 전시 상황에서 핵 폐기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따라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원칙에 합의하고, 이어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정전협정 당사국을 포함한 4자회담을 통해 정전체제를 마무리 짓는 프로세스가 진행될 것이다.”

_북한이 과연 비핵화하겠냐는 회의론도 여전하다.

“그 회의감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도 미국이 체제보장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 개발 중단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의 불신을 낮추기 위해 먼저 신뢰를 보인 것이다. 미국도 이에 화답하는 분위기다.”

_남측의 임기제 대통령과 북측의 임기 없는 지도자 간 합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권과 정권 간 대북정책 계승이 잘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에 맞물려 있다. 중국도 대화 테이블에 앉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함께 추동해가는 구조다. 북한도 합의된 내용을 지켜가는 것 외 달리 길이 없다. 물론 남북 간 합의된 내용을 제도화하는 한편 3자든 4자든 다자 협의체를 정례화하는 과정도 뒤따를 것이다.”

_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어떤 역사로 기록될까.

“70년 분단 역사의 한을 풀어내는 장면이 될 것이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날에 비견할 수 있을까. 그런 감동을 기다리고 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이재정은

지금은 ‘진보 교육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설계자였다. 2006년 33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돼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장으로서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총괄했다. 지금은 원로 자문단 멤버로서 자신의 경험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조언자 역할을 맡고 있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7대 국회의원에 불출마하고 사목활동을 하는 등 정치권과 거리를 둬오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2009년부터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있다 2014년 제16대 경기교육감에 당선됐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신학박사를 따고 국내에서 성공회대 설립을 주도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1944년 충북 진천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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