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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5월 22일] 기자가 부끄럽다

입력
2013.05.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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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3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폴리널리스트' 이력을 제외한 게 그렇다. 정치부장, 논설위원, 논설실장까지 지냈다. 햇병아리 기자로 들어와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은 셈이다.

윤창중 사건이 터지자 언론들은 그를 이단아나 돌연변이 취급을 했다. 기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이 도매금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경계한 때문이다. 윤창중이 거쳐갔던 언론사들은 더 날을 세웠다. 자사에 조그만 흠집이라도 나지 않을까 저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럴만한 인물이 저지른 그럴만한 짓이었으니 감쌀 마음도, 그럴 처지도 아니라는 건 이심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분명 윤창중은 평균적인 기자상과는 다르다. 이념적인 지향이 아무리 달라도 그렇게 저열하고 섬뜩한 표현을 동원해 남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부적절한 언행과 막말 수준의 칼럼, 권력과 언론을 자기집 드나들 듯 하는 행태는 같은 기자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개인적 성향을 감안한다 해도 이번에 드러난 추태가 언론계 풍토와 문화의 소산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미꾸라지 한 마리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싶어도 국민들은 그리 봐주지를 않는다. 어디선가 자기 반성 한마디쯤은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그래서다. 교사가 촌지를 받거나 검사가 뇌물을 받으면 교직사회나 검찰 전체를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해왔던 보도 관행에 비춰보면 이중적이다.

윤창중 사건은 머리 끝까지 차오른 그의 권위의식에서 일어났다. 엄연히 국가를 위해 활동하는 인턴직원을 아랫사람 부리듯 호통치고 허드렛일을 시킨 것에서 물씬 느껴진다. 그런 터무니 없는 권위의식은 수십 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것이 아닌가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기자들이 의외로 자주 보인다. 외부 인사들을 만나면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안하무인 격의 기자들이 많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일부 군소언론사에서는 아예 그렇게 행동하도록 교육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고위관료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취재원들에게 주눅들지 말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은 적은 있을지언정 취재원들에게 함부로 하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언론과 기자들이 더 부끄러워할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갑을문화다. 언론이 원래 자기 눈의 들보는 잘 보지 않는다지만 마치 남의 일처럼 태연하게 갑의 횡포를 질타하는 기사를 보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사실 기자야말로 갑중의 갑이라는 게 세간의 시각인데 정작 언론사와 기자들이 자행하는 갑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술과 골프를 비롯한 노골적인 향응 요구에 진저리 치는 을들이 허다하다. 기자들 뒤치다꺼리에 배알이 뒤틀리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을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묻어가기 식의 기업 해외출장, 신제품과 공연티켓 청탁, 기자 워크숍 비용 부담 등 관행화된 갑질에 문제의식조차 옅어져 가고 있다.

진짜 문제는 언론사에서 나서는 갑질이다. 회사 수익과 관련된 것일 경우 갑질의 횡포는 종종 도를 넘는다. 이런 경우 기사하고도 교묘히 연관돼 있다. 회사 차원의 갑질에서 자유로운 언론사는 거의 없는 게 우리 언론 현실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독립성을 확보했지만 자본권력에 대한 예속이 심해지면서 부쩍 갑질이 심해지는 양상이다. 언론과 기자가 갖춰야 할 품위와 정도는 그만큼 멀어지고 있다.

윤창중은 언론인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언론인이라는 칭호는 기자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붙일 수 있는 명칭이 아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올 곧은 기자로서 살아온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월계관 같은 거다. 스스로 붙일 수 없는, 남들이 불러줘야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다. 기자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는지 한 번쯤 깊게 고민해봐야 할 요즘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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