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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예’와 ‘공예적인 것’ 사이의 거리

입력
2018.05.31 18:4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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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공예’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면 공예가가 아니라 예술가, 디자이너, 인문학자들이 서 있다. ‘공예’를 거론하는 것이 마치 하나의 유행이 된 듯 하다. 공예가 생업인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공예의 본질, 혹은 공예의 융성과 관련된 연관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예’에 대한 담론이라기보다 ‘공예적인 것’에 대한 담론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공예가 아닌 ‘공예적인 것’들의 유행.

정체성이란 단일한 요소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호 연관이 없는 듯 보이는 수많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꿰어져 맥락을 형성하며 하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공예 역시 수많은 요소들의 집적이다. 노동, 기술, 물성, 쓰임, 동시대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떤 맥락을 통해 공예라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 영화의 정체성이 문학, 연기, 조명, 미술, 의상 등의 복합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과 같다.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의미 규정과 담론 없이 단지 의상으로만 영화를 이야기 한다면 그것을 영화담론이라 부르기에 무리가 있다.

미술계나 사회학자들이 공예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대부분 기술이나 기법, 노동, 도구를 쓰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초점이 모아져 있다. 현대예술로 넘어오며 예술이 놓쳐버린 가치들, 산업사회의 발달 속에서 추락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방법론을 공예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다. 디자인계 역시 한계에 다다른 디자인의 돌파구로서 공예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꺼내 개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들과 반응하며 어떤 정체성을 만들 때 그 요소들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본래의 의미에서 변화된다. 고춧가루는 고유한 성질을 지니지만, 김치에 들어간 고춧가루는 원래의 고춧가루와 다른 의미가 되는 것과 같다. 정체성은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불가역성을 조건으로 한다. 기술이나 기법, 노동, 도구와 같은 요소들은 ‘공예’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며 공예기술, 공예기법, 공예노동 등과 같이 성질의 변화를 갖는다. 때문에 이미 불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킨 공예의 요소들을 다시 하나씩 꺼내 원래의 의미로 환원해 적용할 때, 그것은 이미 ‘공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공예적인 것’은 ‘공예’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공예적인 것’의 담론은 공예 외적인 것에서 출발한 후 그 스스로를 확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공예적인 것’에 대한 담론들이 공예와는 무관하게 느껴진다.

혹자는 말한다. ‘공예적인 것’에서 귀납적으로 공예가 규정되어질 수도 있다고.

나는 그것을 ‘역류’라고 말한다. ‘공예적인 것’이 공예에서 연유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시 공예로 환원될 수 없다. 혹은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 역류는 공예의 본질과 공예가 나아갈 길을 변질 혹은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순서가 뒤바뀐 현재의 공예담론이 더욱 위험한 이유다.

‘공예적인 것’의 담론은 ‘공예’에서 출발해야 하며, 공예화된 요소들을 공예와 분리시켜 분절적으로 다루는 것은 올바르지 않거나 틀렸다. 나는 공예담론이 공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는 이유가 그러한 오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오류가 유용한 분야가 있겠지만, 적어도 공예에는 해가 될 것이며, 이는 결국 ‘공예적인 것’이 가지는 유의미성 마저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아직 공예가 무엇인지 모른다. 공예는 너무 오래 잊혀졌거나 혹은 새로 ‘발명’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공예적인 것’에 대한 담론 이전에 ‘공예’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돼야 한다. 또한 공예를 말하는 자리에 공예가도 나란히 서 있어야 한다.

김윤관 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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