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 기자

등록 : 2018.02.20 04:40
수정 : 2018.02.20 10:39

“피아노 조율의 끝은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 날 때죠”

등록 : 2018.02.20 04:40
수정 : 2018.02.20 10:39

국내 첫 조율 명장 이종열씨

60여년 전 풍금 뜯어보며 독학

연주 중 줄 끊기는 것에 대비

무대 오르려 늘 정장 입고 다녀

“가장 까다로웠던 지메르만도

완벽한 조율이라고 극찬”

조율사의 피아노는 얼마나 좋은 소리를 낼까. 이종열 조율사는 “집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한 대 있지만, 조율 안 한지 몇 년 됐다. 대장장이 집에 식칼은 무딘 법”이라며 쑥쓰럽게 웃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현악기 분야에서 세계 3대 명기로 흔히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과다니니를 꼽는다. 과르네리가 남성적이고 볼륨 있는 소리를 내는 반면 스트라디바리는 여성적이고 섬세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주자의 주법과 악기 특성에 따라 선호하는 브랜드도 다르다. 음의 진폭이 큰, 풍려한 울림을 들려주는 아이작 스턴, 이자크 펄만이 과르네리를, 강렬하고 감각적인 음을 선사하는 예후디 메뉴인이 스트라디바리 연주의 정수를 보여 준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연주홀에 있는 악기를 써야 하는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매번 악기가 바뀌어도 비슷한 음색을 낼까. 비행기에 자기 피아노를 싣고 다닌 호로비츠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피아니스트들은 연주홀 피아노에서 ‘원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조율을 요청한다. 얼마 전 jtbc ‘이방인’에 방송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모습이 단적인 사례다. “금속음이 강하고 건반 반응이 느리다”는 지적에 조율사는 선우예권의 마음에 들 때까지 피아노를 손봤다. 리허설부터 극도로 예민해진 선우예권은 공연 10초 전까지 대기실을 떠나지 못했다.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80)씨는 이렇게 피 말리는 경험을 수십 년째 하고 있다. 호암아트홀, KBS홀,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등 국내 대표적인 공연장의 피아노를 조율했고, 2007년 피아노 조율사로는 처음으로 명장이 됐다. 최근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에서 만난 이씨는 “이 나이에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춰입고 기자를 맞은 그는 “(피아노 줄이 끊기는 등 사고가 나면) 가끔 무대에 오를 때도 있어 대비하느라 정장을 입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습관이 돼 이렇게 입고 일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예술의 전당 피아노 조율사 이종율씨. 신상순 선임기자

조율을 처음 경험한 건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6년, 피아노가 아니라 풍금을 통해서였다. “단소 같은 단선율 악기 소리만 듣다 화음을 처음 듣게 된” 황홀감을 잊기 못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회 풍금을 뜯어 혼자 공부했다. “친구가 풍금이 일제니까 풍금 고치는 책도 일본어로 쓰인 게 있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전주 시내 서점에 책 사러 갔다가 일본책 목록을 보고 ‘조율’이란 단어를 처음 알았어요.” 서울에 상경해 수도피아노사, 삼익피아노사 등에서 근무하다 피아니스트들의 입소문을 타고 공연장 피아노 조율을 맡기 시작했다.

이 조율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예술의전당 전속 조율사로 ‘스카우트’된 건 1995년이다. 그동안 예프게니 키신, 스타니슬라브 부닌 같은 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는 물론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까지 당대 최고 연주자들의 공연에서 피아노 조율을 담당했다. 이씨는 일주일치 일정이 빼곡히 적힌 ‘조율 스케줄표’를 손에 쥔 채 “공연 일정이 빽빽해 연휴라도 길게 쉬지 못한다. 작년 20년 만에 가족들이랑 해외여행을 갔다”고 말했다.

내로라하는 당대 아티스트를 모두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까다로운 연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란다. 2003년 내한 공연 때 피아노 한 대, 리허설용과 연주회용 건반 두 세트를 가져온 그는 “연주할 때 음정만 정확하게 맞춰 달라”고 요구했다. “지메르만 조율 솜씨가 상당 수준이었어요. 액션(연동장치)을 손 안 봐도 될 정도였죠.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다음날 손가락 마디가 다 뻐근했죠.” 음정 맞추는 데만 평소보다 두 배 긴 2시간이 걸렸고, 지메르만은 앙코르 무대에서 “미스터 리에게 감사한다. 완벽한 조율로 피아노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줬다”며 극찬했다. 이씨는 “내 조율인생을 길이 빛낼 대단한 얘깃거리”라면서도 “올해 11월 지메르만 내한공연에서는 전속 조율사를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멋쩍게 웃었다. 까다롭기로 비견한 괴짜 연주자 라두 루푸 역시 국내 공연 후 “이렇게 따뜻하고 힘 있는 피아노 음색은 처음”이라고 이 조율사의 솜씨를 호평한 바 있다.

이 조율사의 남은 바람은 자신의 경험과 일화를 남기는 것. 그는 요즘 지메르만과 조지 윈스턴 등 내한 연주자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은 자서전을 쓰고 있다. “제 기술과 경험은 ‘공적 자산’이란 생각으로 매일 연주홀에 옵니다. 죽기 전에 책으로 남겨 전해 주고 싶어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예술의전당 전속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씨가 하프시코드를 조율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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