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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지식, 상상, 실천의 삼박자

입력
2017.09.0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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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라고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아는 것, 즉 지식은 세상만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힘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세기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지식도 질문과 호기심,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상상의 힘은 위대하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것을 상상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는 등의 능력은 생명체 중 인간만이 갖고 있다. 상상으로부터 창의적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미래의 가상 시나리오도 그려진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디어 100개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로 상상한 것을, 몸을 움직여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상상력이 뛰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글로 옮기고 책으로 출판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도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에 의하면, 실패하는 리더의 70%는 실행력 부족 때문이며 미국 경영자의 95%는 옳은 말을 하고 나머지 5%는 옳은 일을 실천한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도 말로 그친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용어는 R&D, 즉 연구개발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원리를 찾는 연구(Research)는 그냥 연구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원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만드는 개발(Development)로 이어진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중요해지면서 요즘은 I&D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상상실현’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I는 상상(Imagination)을 뜻한다. 상상만 하지 말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단어 중에는 ‘앙가주망(engagement)’이 있다. ‘약속, 계약’ 등의 뜻도 있지만 보통은 작가나 지식인, 예술가들의 ‘사회적 실천과 참여’를 가리킨다. 프랑스에서 사회참여는 19세기말 드레퓌스 사건 후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이다. 가령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는 명문을 발표하며 진실을 위한 투쟁에 나섰고, 2차 대전 후 실존철학자 사르트르는 프랑스령 알제리의 독립투쟁을 지원했다. 가깝게는 당대 최고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있는데 그는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에 나타나 지지성명을 읽곤 했던 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는 지성이었다. 불의가 횡행할 때는 지성과 양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불의에 맞서지 않고 침묵하는 것도 불의와 공범이 될 수 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상상과 아이디어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상상이 다른 사람의 실천, 행동과 만나도 된다. 외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실천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한다. 일종의 혁신 분업이다. 행동과 실천이 중요하지만 결국 그 힘은 지식, 상상, 아이디어로부터 온다. 연구가 없으면 개발이 가능하지 않고, 상상이 없으면 실현이 불가능하다. 지식, 상상, 실천의 삼박자가 맞아야 변화가 이뤄진다. 드라마 정도전의 명대사로 회자된 고려말 권문세족 이인임의 말을 되새겨본다. “힘없는 자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도 없지요. 세상을 바꾸려거든 우선 힘부터 기르세요. 고작 당신 정도가 떼를 쓴다고 바뀔 세상이었으면 난세라 부르지도 않을 테지요.” 힘을 기른다는 것은 지식과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고 힘을 쓰는 것은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힘을 쓸 수도 없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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