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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방 안 코끼리

입력
2016.10.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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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3년 11월 18일자에 당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급부상하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표지 인물로 내세우면서 ‘방 안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라는 제목을 달았다가 구설에 올랐다. 거구인 크리스티 주지사의 비만 문제를 거론한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타임의 마이클 더피 편집장은 “그리스티 주지사는 누가 봐도 거구”라며 “그는 공화당 거물급 인사이고, 재선 성공이라는 큰일을 했다”고 해명했지만, 인격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었다.

▦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의 상징 동물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도 종종 ‘코끼리’로 묘사된다. 올해 1월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제7차 공화당 대선 TV 토론회에서 진행자로 나선 폭스뉴스 여성 앵커인 메긴 켈리는 “이 방에 없는 코끼리 이야기를 해 보자”며 트럼프를 도마에 올렸다. 트럼프는 켈리와 불화로 토론회에 불참했다. 올해 4월에는 미국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코끼리 산모가 아기(트럼프)의 출산을 앞둔 장면을 그린 만평(캘리포니아주 매체 새크라멘토비)을 2016년 만평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 ‘방 안 코끼리’는 공공연한 비밀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행태를 지적한다.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거나 모독이 될 경우다. 심리학에서는 소통과 공감의 문제를 다룰 때 주로 언급한다. 의사결정 회의에서 마치 방 안에 코끼리가 없는 것처럼 대화를 진행하면서 정작 핵심은 비켜 가는 방식이다. 대기업을 예로 들면 위기에 처했더라도 원인이 됐던 오너의 비리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못한 채 실적 부진 등 ‘코끼리 다리’만 더듬는다.

▦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이메일 파문을 연상시킨다. 바깥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난리다. 그러나 아무도 ‘방 안 코끼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근데 갑자기 개헌논의가 불거졌다. 개헌논의가 경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박 대통령이다. 국면전환용이라는 의심이 가지만, 약발이 들을 것 같지 않다. 이제는 방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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