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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누볐던 원양선원들, ‘40년 만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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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누볐던 원양선원들, ‘40년 만의 귀향’

입력
2017.06.1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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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6월 김일환(오른쪽) 당시 상공부장관이 윤정구 지남호 선장에게 밧줄을 건네고 있다. 지남호는 인도양에서 조업 활동을 한 대한민국 최초의 원양어선이다. 한국원양산업협회 제공
1957년 6월 김일환(오른쪽) 당시 상공부장관이 윤정구 지남호 선장에게 밧줄을 건네고 있다. 지남호는 인도양에서 조업 활동을 한 대한민국 최초의 원양어선이다. 한국원양산업협회 제공

1970년대 이역만리 바다에서 외화벌이를 하다 불의의 사고 등으로 숨을 거둬 외국 땅에 묻힌 원양어선 선원들의 유해가 40여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다.

해양수산부는 14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대서양 스페인령 섬에 묻혀 있던 원양어선 선원의 유골 5위(位)가 귀환한다고 13일 밝혔다.

선원 이모(72년 사망)씨, 배모(78년 사망), 유모(80년 사망)씨는 그간 서대서양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에 안장돼 있었고, 정모(75년 사망)씨와 또 다른 정모(76년 사망)은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에 묻혔다가 고국에 돌아온다.

라스팔마스와 테네리페는 60년대부터 한국 대서양 어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당시는 국내에 이렇다 할 산업 기반이 없어, 외화벌이를 위해 많은 선원들이 세계 각지에 파견됐다. 70년대초 한국 외화 수입의 5% 정도가 원양어업 활동에서 나왔다.

당시 선원들은 병이나 사고로 사망해도 운구가 어려워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 묘지에 묻혔다. 이충구 라스팔마스 한인회장은 “초창기엔 경험 부족으로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났다”며 “70∼75년 사이 한 달에 한 명 정도 사람이 죽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002년부터 해외 선원 묘지 정비 사업에 나선 해수부는 2014년부터 유가족들의 신청을 받아 해외 묘지를 국내로 이장하는 사업을 무상으로 벌이고 있다. 이번에 돌아오는 선원 5명의 유해를 빼면, 라스팔마스 사모아(남태평양) 수리남(남아메리카) 등에 남아 있는 선원 묘지는 296기(基)다.

올해는 57년 참치연승 시험조사선인 ‘지남호’가 인도양으로 출항하며 한국 원양어업이 시작된 지 60주년을 맞는 해다. 해수부는 “원양어업 60주년을 맞아 경제 발전을 이끌던 숨은 주인공인 원양 선원 알리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해외 선원묘지 관리 및 국내 이장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해외에 묻힌 선원 가족의 이장을 원하는 유가족은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등을 한국원양산업협회에 제출하면 된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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