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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대항해 시대는 빵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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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대항해 시대는 빵 때문에 가능했다?

입력
2017.09.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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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 철학자들이 모여 저녁 식사 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스위스 화가 장 위베르의 작품.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볼테르다. 책과함께 제공
18세기 프랑스 철학자들이 모여 저녁 식사 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스위스 화가 장 위베르의 작품.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볼테르다. 책과함께 제공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정기문 지음ㆍ책과함께 발행

336쪽ㆍ1만4,800원

“흔히 근대 초에 나침반과 조선술이 발달하여 서양인의 대항해 시대가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만약 서양인이 빵이 아니라 밥을 먹었다면 그런 항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주식으로도 구분된다. 유럽인이 쌀밥이 아닌 빵을 주식으로 택한 건 기본적으로 밀, 보리와 같은 밭 작물이 잘 자라는 기후와 토양 조건 때문이었다. 밀은 쌀보다 소화가 잘 안 되지만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 있고, 보관 측면에서도 쌀보다 낫다. 전쟁을 할 때조차 동양에서는 병사들이 이동할 때 취사용 도구가 필요했지만 서양에선 그렇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육지에 닿을 수 없는 항해에서 생존을 가능케 한 건 쌀밥이 아닌 빵이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설득력 있다.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는 역사학자가 쓴 음식이야기다. 로마사로 학위를 받은 정기문 군산대 사학과 교수가 음식을 통해 세계사를 설명해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고기(육식), 빵, 포도주, 치즈, 홍차, 커피, 초콜릿이 어떻게 서양의 ‘소울 푸드’가 됐는지, 반대로 이러한 식생활이 역사와 문명, 사회와 문화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풀어 놓은 이야기 보따리다. 다시 말하면 음식으로 읽는 세계사다.

서양의 역사가 주가 되지만, 하나의 음식으로 연결되는 동양의 역사도 함께 꿰어내 흥미를 자극한다. 중세 초까지만 해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살았던 남성의 평균 수명은 42~44세인 반면 여성은 22~24세밖에 되지 않았다. 저자는 그 이유를 “여성들의 입에 들어갈 고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육식의 증가는 여성 평균수명을 연장했고 남녀 성비의 역전현상도 불러왔다. 육식의 증가는 서양이 근대화를 통해 동양의 문명을 추월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나선 일본은 실제로 서양을 따라잡기 위해 “소고기를 먹지 않는 자는 문명이 아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고기 먹기 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당시에 쓰인 역사책, 기행문, 실제 조사된 통계 등 다양한 사료 그림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본래 동양 문화권에 속했던 ‘차’는 어떻게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됐을까? 영국의 물에는 미네랄이 많아 차에서 떫은 맛을 내는 타닌이 잘 우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에서보다 영국에서 홍차가 더 인기 있는 타당한 이유다. 하지만 실제로 홍차가 영국에 뿌리내리게 되기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건 영국 동인도회사의 수출입 내역과 노동문화다. 18세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영국 노동자들에게 설탕을 탄 홍차는 휴식시간(티타임)은 물론 에너지까지 제공하는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현대로 올수록 식사는 생존을 위한 행위에서 점차 그 맛을 즐기기 위한 행위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디저트처럼 천천히 음미하면 좋을 책이다. 오래 전 지배계급, 부자, 남자만 먹을 수 있던 음식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환상에 빠져있을 즈음, 흥미로운 이야기 끝에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커피와 카카오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이들은 정작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며 윤리적 소비에 대한 경각심까지 일깨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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