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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처럼 때마다 다녀가시니... "함무니! 농장 출입금지예요"

입력
2014.09.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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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하다 소문난 앞집 간전댁...아내와 있을 땐 부드러운 할머니

"선재 아빠, 혼자 그 일 다 못 혀"... 맘 불편하다고 완곡히 거절해도

"안 데리구 오면 혼자 걸어오지"

내가 할머니 나이 때 누군가에게 가르침이 되는 간전댁이 되어 있었으면...

내가 안 되면 아내라도...

"워쩌케 이렇게 생겼으까이?" 아내와 농장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던 간전할머니가 뿌리가 길게 늘어진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신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따로 물을 주지 않아서 잔뿌리가 땅속으로 길게 들어간 것이다. 70년 경력의 농사 베테랑 간전할머니는 서툰 초짜 농부에게 절친이자 천사다.
"워쩌케 이렇게 생겼으까이?" 아내와 농장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던 간전할머니가 뿌리가 길게 늘어진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신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따로 물을 주지 않아서 잔뿌리가 땅속으로 길게 들어간 것이다. 70년 경력의 농사 베테랑 간전할머니는 서툰 초짜 농부에게 절친이자 천사다.
땅속에 들어갈 종자들이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다. 저 놈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뿌듯하다. 무럭무럭 잘 자란다면 누군가의 건강한 먹거리가 될 것이다. 내겐 하늘 같은 존재다.
땅속에 들어갈 종자들이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다. 저 놈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뿌듯하다. 무럭무럭 잘 자란다면 누군가의 건강한 먹거리가 될 것이다. 내겐 하늘 같은 존재다.
아내가 할머니 댁 툇마루에 앉아 오순도순 옥수수 알을 떼어내고 있다. 간전할머니댁은 아내가 몸이 안 좋거나 다퉜을 때 건너가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아내가 할머니 댁 툇마루에 앉아 오순도순 옥수수 알을 떼어내고 있다. 간전할머니댁은 아내가 몸이 안 좋거나 다퉜을 때 건너가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8월의 산타처럼 교황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후, 뭔가 나아질 것 같던 세상은 곧바로 예전의 관성을 되찾았다. 뉴스에는 맨날, 새빨갛거나 시퍼런 배경에 앉아 빤지르르 머릿기름 바르고 표정만 심각한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꼭 나온다. 반면에 햇볕에 바랜 누런 배경 앞의 사람들은 여전히 초췌하고 슬프다.

‘단식’은 몰라도 ‘폭식’이 정치 뉴스로 나오는 세상은 예상 못했다. 추석 때 생각 없이 먹어댄 게 죄스럽기만 하다. 어떤 외국인이 자기네 나라는 심심한 천국이고 코리아는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했다는데, 이걸 확! “우리나라를 지옥이라고 한 것도 그렇지만, 넌 여기 돌아가는 꼴이 재밌냐? 불구경이 재미있는 건 짜샤 지는 강 건너에 있으니까 그런 거야 임마. 알아들어? 확 군대에 입대 시켜버릴까 부다.” 흥분하면 안 된다. 식도염 도진다. 화 내면 나만 손해다. 콩밭 풀이나 매야겠다.

바래기. 이름이 참 예뻤다. 만약 우리가 딸을 낳았고 그 전에 이 이름을 들었다면 애 이름을 바래기라고 지었을 지도 모른다. 큰 일 날 뻔했다. 이 땅 300만 농민의 '철천지 웬수'인 국가대표 잡초의 이름이었다. 콩밭을 위 아래로 점령한 이 놈들을 뽑기 위해서는 두 손 두 무릎으로 기어들어 가야 했다. 이미 지표면은 바래기의 세상이다. 놈들은 줄기를 뻗어가며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는 생존방식을 자랑한다. 대강 잡아 뽑으면 꼬리 자르듯 툭 끊어져주고 뻔뻔하게 잘 살아가는 모양이 아까 그 기름 바른 사람들을 닮았다. 생각 없는 콩대는 이놈들과 밤새 블루스를 추다가 자빠진 듯 얽히고 설켜 바닥에 같이 드러누웠다. 조심스레 더듬으며 큰 뿌리를 찾아야 한다. 머리끄덩이 잡듯 손가락으로 몇 뿌리 감아 일어서며 쭉 잡아당겼다. 어렸을 적 ‘전설의 고향’에서 봤던 미친 여자 산발한 모습으로 질질 끌려 나온다. 길게 늘어진 풀을 둘둘 말아 망나니 머리처럼 뭉친 덩어리를 매실나무 아래로 내던졌다. 통쾌하다.

다시 바닥으로 기어들어가려다 보니 모기가 한 여름 가로등 아래 하루살이들처럼 버글거린다. 눈 감고 박수 쳐도 서너 마리는 잡히겠다. 내가 무딘 편인가. 그제서야 온 몸이 근지러운 이유를 알았다. 옛말 틀린 거 없다던데 이번엔 확실히 틀렸다. 모기 입이 돌아간다던 처서가 지난 지 한 달이 됐는데 얘들은 어떻게 아직 회식 준비를 하고 있냔 말이다. 아니면, 입은 삐뚤어져도 피는 똑바로 빨라고 교육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그런 와중에도 옆에 계신 할머니는 허리를 허옇게 드러내고 상체를 파묻은 채 아랑곳 않고 풀을 뽑으셨다. “할머니, 아유 이런, 모기 다 물려요.” 옆에 가서 윗도리 잡아당겨 드리자 “냅둬요. 모구(모기)는 농사 안 지니께 이렇게라도 먹구 살아야지 뭐.”

간전할머니. 앞집 사시는 아내의 절친이다. 얼마 전 “선재 아빠, 혼자 그 일 다 못혀요” 하시며 농장 일을 도와주러 오신다고 하기에 “할머니 그러시면 제가 맘이 불편해서 안 되요. 동네 분들한테 저만 욕먹어요. 오지 마세요” 했더니 다음날 2km 거리를 새벽에 걸어오셔서 토란 밭을 정리하고 계셨다. “할머니! 이제 농장 출입금지예요!” 큰 소리를 냈지만 오히려 할머니는 “안 데리구 오면 또 걸어오믄 되지 뭐” 하시며 협박성 미소를 지으셨다. 이후에도 여러 번 할머니와 비슷한 건으로 맞서봤지만 번번이 패했다. 몇몇 분들과 어찌하면 좋을까 의논도 해 봤지만 “어쩔 것이여”가 중론이고 “그냥 잘 해드리는 수 밖에”가 대안이었다.

택호가 ‘간전댁’이라 보통 마을 분들은 ‘간전떡(댁)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아내가 ‘할머니’로 부르고 싶다고 해서 우리만 그렇게 부른다. 그렇잖아도 이사 온 초기에 동갑내기 이장이 “자네는 왜 간전떡 엄니를 할머니라고 부른댜?” 물어왔다. 농장에 놀러 와서 담배 꽁초 아무데나 버리는 것 빼고는 좋은 친구다. 난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이 봐, 선재 엄마가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내가 어머니라고 부르면 둘이 관계가 어찌 되겄나. 가뜩이나 웃집 할매가 아내보고 두 번이나 ‘이 집 딸래미여?’ 물으셨다는데.” “그거야 자네랑 제수씨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잉게 그런 거지. 몇 살 차인디?” “까마득한 두 살.” 이 친구 머뭇머뭇 하더니 “자네가 잘못했네” 하며 돌아선다. “내가 뭘!”

어쨌든 간전할머니는 우리에게 앞집 할머니 그 이상이다. 내려온 첫 해 마당 텃밭에 감자를 심는데 할머니들이 도와주겠다고 오셨다. 농사라고는 책으로 배운 것 뿐이라 잘됐다 싶었는데 그 중 간전할머니는 오히려 나한테 물으셨다. “감자를 엎어 심으까요 뒤집어 심으까요.” “감자 새를 이 정도 띄우면 되겄소?” “두둑 옆으로 심고 북을 줄라요 아니면 가운데 그냥 높이 심을라요.” 오히려 나한테 방법을 물으시니 무안스러웠다. “할머니, 왜 저한테 가르쳐주시지 않고 물어보세요?” 여쭤보니 "생각해 놓은 게 있으실 텐데 워쩌케 내 맘대로 심는다요” 하셨다. 70년 경력의 베테랑이 초짜 신병의 뜻을 물으시는 거다. “지극한 예(禮)는 물어서 하는 것”이라고 했던 공자의 말씀이 실제로 발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 농막에서 물 한 모금 잡숫고 하시게요” 잠깐 쉬었다 하자고 말씀 드렸더니 “집에서 마시고 나왔는디 뭘 또 먹자 그요.” 집에서 나온 지 서너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러신다. 억지로 끌려 오시던 할머니가 감나무 아래서 채 덜 익고 떨어진 대봉 감을 주우셨다. “이런 것두 장에 내가면 다 팔렸는디” 하신다. 다른 해보다 많이 떨어져 버린 감을 아까워하시는 것 같아 죽을 맞춘답시고 “시장에 한 번 가져가 볼까요?” 했더니 “그 때 사먹던 사람들은 벌써 다 세상 떴지. 이젠 이게 팔리간디요?” 자꾸 무안스러워진다.

선풍기 틀고 물 따라 드리면서 모기 욕을 늘어놨더니 할머니도 뭐라고 욕을 하시는 것 같은데 잘 못 알아 들었다. “예? 뭐라고 그러신 거예요?” 천천히 말씀하셨다. “모구 댕긴다고 해싸도 우리가 없으면 느그 새끼들은 벌 볶아서 주왕에 찌끄러논거 맹키로 벌벌 떨거이여 그런다고요!” 다시 설명을 하시는데, 예전부터 내려오는 모기 입장에서 하는 얘기라신다. “인간들아, 모기 많이 돌아다닌다고 욕하지 마라. 그나마 우리가 안 보일 때가 되면 너희 자식 새끼들은 뜨거운 불에 볶은 벌이 오그라든 것처럼 추워서 부엌에 쪼그려 앉아 벌벌 떨거여” 이 뜻이란다.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너무 떠들지 마라 이런 얘긴가 보다.

이렇듯 할머니가 툭 던지듯 하시는 말씀들은 주옥이 많다. 대개는 전해 내려오는 것이겠지만 적절한 타이밍은 할머니 몫이다. “가실(가을) 일 할 때는 오줌 누고 골마리(허리춤)도 못 추켜 올린답디다. 선재 즈그 어매는 애들 가르친다고 바쁘고, 선재 아빠 혼자 하느니 손이라도 보탤라구 하는 것잉게 부담 갖덜 말어요. 난 암시랑토 않응게. 아 보리방아 찧을 때 옆에서 머리만 까딱거려도 도움된다고 안헙디여” 내 입을 틀어막으려고 작정을 하신 게다.

말씀만이 아니다. 작년 일이다. “유헌씨 이거 좀 봐” 점심 먹으러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내가 신이 나서 큰 베 보자기 같을 걸 들고 흔든다. “내가 차 덖을 때 멍석대신 깔고 차를 비빌려구 할머니한테 이불집에 가면 광목천을 살 수 있냐고 여쭤봤어. 그랬더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무명 두루마기를 다 뜯어서 밤새 만드셨대. 어쩌면 좋아” 울먹이며 하는 설명을 듣고 보니 누르스름하게 빛이 바래 세월이 느껴지는 천이 조각보처럼 정성스레 꿰매져 있었다. 마침 할머니가 마당으로 들어오신다. “죽은 영감 거여. 내가 젊어서 만들아 준 거이라. 꼬실라뿌까 하면서 몇 년을 들었다 놨다 했는디 선재 어매가 쓸모가 있어서 쓰믄야 내가 좋지”하시며 수줍게 웃으셨다.

그 해 가을, 키질이 서투른 아내는 가을에 타작한 콩에 섞인 콩깍지며 작은 줄기들을 종일 손으로 골라내다 절반도 못하고 툇마루에 놔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선재 학교 가는데 보니 말끔한 콩알들이 바구니에 담겨 마루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우리가 깨기도 전 새벽에 할머니가 키질을 해놓고 가신 거다. 아내에게 “할머니한테 해 달라고 했어?” 타박조로 물으니 절대로 아니란다. “혹시라도 그러실까 봐 키질 흉내도 안 냈다구!”.

일부러 쉬쉬해도 소용없었다. 메주 쑤는 날 아침이면 숯 가득한 화덕 솥에는 이미 콩이 푹 삶아져 있고, 김장하는 날이면 배추는 절여져 물이 빠져 있고, 장 담그는 날이면 사람만한 항아리가 씻겨 엎어져 있었다. 우렁각시가 따로 없다.

꺾인 운동화 질질 끌고 혀 짧은 소리로 “함무니~” 부르며 뽀르르 달려가는 아내, 머리에 흰 서리가 덮인 지 아내 나이만큼 되는 간전할머니는 서른 다섯 살 차이를 극복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절친이 됐다. 20년 전, 남편을 먼저 하늘로 보내시고 장년의 자제는 모두 객지에 있고 혼자 사신다. “긍게 영감 보낸 그날이 딱 7월 9일이여” 하시며 시작되는 할머니의 레퍼토리. 아마 아내는 수십 번은 들었을 거다. 그래도 할머니 옆에 누워 매번 처음 듣는 양 대꾸 해드리며 귀를 세운다. 마을에서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분인데, 신기하게도 아내와 있을 때는 한없이 부드러워지신다. 뵙는 것만으로도 죄송스러울 때가 많은데 오히려 “선재네가 옆으로 와 줘서 내가 고마워” 하실 때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저녁 먹고 뒹굴고 있는데 선재가 방으로 왔다. “아빠, 성공하려면 꼭 공부 잘해야 돼?” 기습적인 질문인데다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아니 꼭 뭐...”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했다. “아빠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다며. 그래야 회사도 다니고 이 정도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이 녀석의 의도가 뭘까 “글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왜?” “서울 애들은 나 보다 공부도 훨씬 많이 하고, 점점 차이도 날 거고, 나 학원 다닐까?” 지난 겨울방학에 도서 벽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캠프에 다녀 온 뒤 불안한 마음이 생겼나 보다.

“선재야, 봐라. 도시 애들 놀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공부하고 과외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갔다 치자. 또 밤낮으로 취직시험 준비해서 회사에 들어갔다 치자. 또 밤낮으로 일하고 술 잘 먹고 눈치 잘 봐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 치자. 그래서 머리에 기름 바르고 악수 많이 하고 다닌다고 치자. 그러면 성공한 건가? 그 사람들이 결국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 꿈뻑거리는 선재 눈을 보며 말했다. “시골 내려와 사는 거야.” “오! 그럼 아빠도 성공한 거네!” 속으로 ‘그 사람들은 내려와도 일은 안하지’ 했지만 마무리는 해야 했다. “아빠 생각에 성공이란 건 따로 없어 선재야. 그냥 계속 꿈을 꾸고 이루고, 또 꾸고 이루고, 그게 중요하지.” 선재가 다시 묻는다. “아빠는 이제 꿈이 뭔데?” “아빠 꿈?” 선재 눈을 바라봤다. 그 눈으로 내 얘기가 쏙 빨려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빌었다. “간전할머니 나이 때 간전할머니처럼 되는 거. 모두에게는 아니라도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고 가르침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알아 들었을까. 더 이상 질문을 않는다.

할머니 모습을 한 누군가의 천사.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내가 안 되면 아내라도......

前 한국일보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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