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집회 약속 연대회의 신고 거부
“차명 신고… 폭력시위 변질 개연성”
법원 가처분 결정으로 논리 무너져
연대회의 “사실상 집회 허가제” 반발
헌법에 보장된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사실상 허가제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폭력 시위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경찰의 항변은 5일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 집회 불허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나오면서 설 곳을 잃게 됐다.
서울경찰청은 3일 오전 490개 시민사회단체의 연합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5일 예정한 도심 집회ㆍ행진 신고에 대해 “폭력집회로 번질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금지를 통고했다. 앞서 금지 통고를 받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나 백남기범국민대책위원회와 달리 연대회의는 “평화적 집회와 행진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당초 연대회의 측이 집회 신고를 할 때만 해도 경찰이 딱히 불허할 명분은 없어 보였다. 흥사단 YMCA 환경운동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참여단체의 정치색이 비교적 옅은 데다 무엇보다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과격폭력 행위에 연루되지 않았던 단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집회를 민주노총과 전농 등이 주도하는 ‘차명 집회’로 결론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주 백남기범국민대책위가 낸 신고서와 진행안은 물론 준비물, 질서유지인 명단 등이 순서까지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가령 집회 신고를 할 때 주최 측은 안전 관리를 책임질 질서유지인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연대회의가 낸 질서유지인 300여명의 명단이 백남기대책위 집회 신고서에 기재된 인물과 거의 동일해 사실상 민주노총과 전농을 주최 당사자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경찰은 주최 측에 평화ㆍ준법 집회를 진행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것을 제의했으나 연대회의 측이 거절했다는 점도 불허 사유로 내세웠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그나마 각서라도 있어야 폭력집회를 막을 명분과 근거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 법률전문가들은 “헌법 가치를 침해하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집회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을 모두 소진한 뒤에야 비로소 고려될 수 있다”며 집회 제한을 최소화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 금지 사유에 해당하는 공공질서를 해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경찰이 궁색한 논리를 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MOU 체결을 집회 승인 조건으로 내건 경찰 결정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집회는 신고제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MOU를 맺지 않았다고 해서 주최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온당한 일이냐”며 “공권력이 원하는 것을 들어 줘야 자유를 주겠다는 발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1980년대 수준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성토했다. 염형철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집회 신고를 하고 MOU를 맺는다는 것이 법적인 사항도 아니고 우리가 서약서를 써주기 시작하면 다른 단체도 집회를 할 때마다 유사한 요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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