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과거의 오늘

입력
2017.01.01 14:42
0 0

페이스북에는 ‘과거의 오늘’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지난 몇 년간 오늘과 같은 날짜에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보여준다. 5년 전 오늘, 나는 내가 키 작은 여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주차를 잘 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도 썼다. 하지만 물론 나는 아직 키가 작고 주차는 커녕 운전도 할 줄 모르는 여자로 살고 있다. 4년 전 오늘에는 가장 친한 친구 둘과 뉴욕을 쏘다니고 있었다. 사십대에 접어드는 것이 하도 아쉬워 떠난 여행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메리 포핀스’ 뮤지컬을 보려고 싼 표를 한참 찾아 헤매기도 했다. 3년 전 오늘엔 남자친구와 올리브 접시를 가져다 놓고 와인을 마셨다. 둘 다 와인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새해를 아마 조금 더 로맨틱하게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흔한 살이 아니라 스물스물한 살이라 우기던 날이었다. 2년 전 오늘은 내가 번역한 ‘빨강머리 앤’이 막 출간된 때여서 동네 소녀들에게 선물할 책을 쌓아놓고 온종일 서명을 했다. ‘빨강머리 앤’은 어릴 적 내가 제일 좋아한 동화이기도 해서, 소설이 나온 것만큼이나 기뻐 종종거렸던 기억이 난다. 1년 전 오늘은 갓 백일이 된 아기가 희한하게도 아침잠이 싹 사라져 암담해했던 날이다. 남들은 ‘백일의 기적’이라고 해서, 아기가 백일만 지나면 그렇게나 얌전해지고 통잠도 잔다던데 우리 아기는 백일을 지나며 떼쟁이가 되었다. 그런 걸 두고 ‘백일의 기절’이라 한다며 먼저 아기들을 다 키워낸 친구들이 나를 놀렸다. 내가 오늘 페이스북에 쓴 글은 내년 오늘에 또 읽게 되겠지. 사는 건 기록이다. 시간이다. 증거다. 숱한 ‘오늘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을 증언해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