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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 리포트] "3670일 거리 인생... 오늘도 복직의 주문을 걸어본다"

입력
2017.03.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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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지난 10일 오후 인천 GM 부평공장 앞에서 열린 동광기연 집회에 초청된 콜텍 해고자 밴드 콜밴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콜밴 4명 멤버 중 한 명은 일자리를 찾아 포도농장으로 떠나 3명만 참석했다. 왼쪽부터 이인근(52), 임재춘(55), 김경봉(58)씨.
그림 1지난 10일 오후 인천 GM 부평공장 앞에서 열린 동광기연 집회에 초청된 콜텍 해고자 밴드 콜밴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콜밴 4명 멤버 중 한 명은 일자리를 찾아 포도농장으로 떠나 3명만 참석했다. 왼쪽부터 이인근(52), 임재춘(55), 김경봉(58)씨.

2007년 4월 9일 월요일 오전. 평소와 다름없이 충남 계룡시 콜텍(콜트악기 자회사) 대전공장으로 출근하던 이인근(당시 42세)씨는 굳게 닫힌 회사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정문 위에 붙어있던 두 장의 안내문이었다. ‘2007년 4월9일~7월9일까지 휴업 후 7월10일 폐업, 희망퇴직을 할 경우 퇴직위로금 지급하며 불법 집회 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며 분노와 황당함이 교차했다.

어느덧 정문 앞에는 직원 40여명이 모였다. 그들은 회사 정문을 뛰어 넘었고 19.8㎡ 크기의 비좁은 노조 사무실에서 대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벽은 회사 정문 담벼락보다 훨씬 높았다. 3개월 뒤 콜텍 노조원 65명, 이듬해 8월 30일까지 콜트 악기 노조원 180여명 등 총 250명 가량의 근로자들은 모두 해고됐다.

10년 전 생긴 일

1973년 설립된 콜트 악기(전자기타 제작)와 자회사 콜텍(1988년 설립ㆍ통기타 제작)은 자체 브랜드인 ‘콜트(Cort)’와 펜더, 깁슨, 아이바네즈 등 해외 기타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한 때 세계 기타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할 만큼 사업이 탄탄했다. 콜트악기는 폐업 전년도인 2006년 8억5,000만원의 손실을 제외하고 이전 10년간 매해 50억~100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냈다. 호실적에 힘입어 이 회사 대표는 2006년 1,191억원의 재산으로 한국 부자 순위 120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해고가 찾아왔다. 콜트ㆍ콜텍은 2007년 ‘경영 악화’를 이유로 콜텍과 콜트악기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폐업을 결정했다. 기존 콜트ㆍ콜텍이 담당하던 기타 제조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공장에 넘겼다. 이씨는 “2006년 콜텍이 노조를 결성하며 여성 근로자 임금 인상, 휴식 시간 보장 등을 받아내는 등 회사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자 회사 측에서 위장폐업을 시도한 것”이라며 “노조 없는 공장을 세우기 위해, 경영이 어렵지 않은데도 부당하게 정리해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근무하던 대전공장은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콜트악기는 현재 콜텍으로 사명을 바꿔 2016년(2015년 7월~2016년 6월) 매출 1,269억원 당기순이익은 51억원을 기록했다. 지금도 영국 유명 밴드인 ‘뮤즈’의 매튜 벨라미, 세계적인 재즈 베이시스트 제프 벌린, 프랭크 겜베일 등이 콜트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공익재단 콜텍문화재단은 기타 동아리와 사회복지재단 지원 사업에 매년 2억원 가량을 쓰고 있다.

꼬이고 꼬였던 판결

이 사건 판결은 수많은 논쟁거리를 낳았다. 우선 대법원에서 콜트악기의 정리해고는 위법으로, 콜텍의 정리해고는 적법으로 인정됐다. 콜텍 사건에 대해 2012년 대법원(주심 안대희)은 해고무효를 선고한 고법의 판결을 깨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 사업부문의 경영사정이 나빠 기업 전체의 경영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면, 해당 사업부문의 폐지를 통해 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불합리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정리해고는 급박한 경영상 필요와 해고회피 노력 등이 전제 되야 인정되는데, ‘급박한 경영상 필요’를 장래 경영 악화 가능성까지 확대한 판례여서 크게 논란이 됐다. 반면 대법원(주심 이상훈)은 콜트악기에 대해 “2006년을 제외하면 그 전에는 계속 당기순이익을 유지하고 있는 등 재무구조 측면에서 안전했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해고를 해야 할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해고무효를 확정했다.

그렇다면 콜텍 노동자들은 그렇다 쳐도, 왜 콜트악기 노동자까지도 복귀하지 못 했을까. 콜트악기 측은 이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폐업으로 인해 돌아갈 사업장이 없다”며 노동자들을 재해고했다. 2014년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반정우)도 “해고한 사용자가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폐업해 근로자들이 복귀할 사업장이 없어졌다”며 “복직을 명령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없어 구제의 이익이 없다”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쌍용차 정리해고도 사건도 서울고법에서 해고무효 판결이 났으나,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등 정리해고에 있어서 우리 법원은 판례상의 도전과 응전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 이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앞. 콜텍 노조 지회장이 된 이인근씨를 6.6㎡ 남짓한 비닐 천막 안에서 만났다. 긴 시간 스트레스와 싸우며 백발이 됐다. 10년간 노조원의 분신시도와 송전탑 고공농성, 단식도 있었다. 그는 “10년 간의 투쟁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콜트악기 노조 방종운 지회장은 “정년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지만 인도네시아든 어디서든 다시 콜트 기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간 노조원들은 하나 둘 떠났다. 노조 자격을 유지하는 이들 46명(콜트 21명ㆍ콜텍 25명), 농성장에 남은 이들은 이씨와 방씨를 포함해 4명(콜트 1명ㆍ콜텍 3명)이다. 사측에 대한 복직 요구는 메아리 없는 싸움이다. 노조가 인도네시아 공장에서라도 일하게 해달라고 했을 때, 사측이 “그러면 인도네시아인 기준 월급을 주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을 정도로 골은 깊디 깊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결국 사과를 하긴 했지만 2015년 9월 “강경한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 골몰해 건실한 회사가 문을 닫는다”며 콜트악기 사례를 들었을 정도로,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사회의 시선은 이들을 더욱 괴롭게 하고 있다. 이들이 농성장을 자유한국당 앞에 꾸린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해고자 정모(59)씨는 급식 납품회사의 면접을 보던 중 콜트악기에서 해고됐다고 이야기하자 사장이 “콜트악기 노조는 근본적으로 악질 아니냐”며 내쫓았다. 정씨는 “그 날의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앓게 돼 일반 회사는 아예 포기하고 새벽마다 인력소개소를 나가 식당, 공장 등을 전전했다”며 “해고 이후 생활이 어려워져 박사 과정을 희망했던 아들이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는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1월에는 콜트악기 부평공장 맞은 편 농성장이 누군가의 방화로 불타기도 했다.

위로의 손길도 많았다. 이들의 사연을 접한 세계적인 록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는 2010년 “기타는 착취가 아닌 해방의 수단”이라며 자비로 미국 로스엔젤레스(LA)로 날아와 콜트를 지지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2009년부터 시민단체의 후원을 받아 악기전시회인 독일의 메세, 미국 애너하임의 남쇼(NAMM Show), 일본 후지 락페스티벌 등을 돌며 콜트악기 사건을 알리고 있기도 하다.

콜텍 해고자 3명은 2011년부터 결성한 밴드 ‘콜밴’을 통해 하루하루 날짜를 늘려가며 대중들에게 이렇게 읊조리고 있다. “3,670일 거리의 인생, 나는야 주문을 걸어본다. 우리에게 희망을 달라고.“ (자작곡 ‘주문’ 중)

글ㆍ사진=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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