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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분별 있는 대북 제재와 창의적 개입

입력
2017.04.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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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타임스는 16일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위기는 미국과 구소련 사이의 핵전쟁 발발 직전에 멈춰 선 쿠바 미사일 위기의 '느린 버전'(Slow Motion)이며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고 진단했다. 핵 추진 항공모함을 한반도에 출동시키는 등 제재압박 일변도로 북한을 향해 돌진하는 미국 트럼프 정권과 이에 대해 역시 핵무력으로 맞서겠다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강 대 강 대치국면을 지켜보노라면 쿠바 위기와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쿠바 위기와 관련한 과거 자료들을 들춰보는데, 칼럼 하나가 눈에 띄었다. 피에르 살린저 전 케네디 대통령 공보비서가 1995년 한 언론에 기고한 ‘케네디 쿠바봉쇄의 교훈’이라는 글이다. 살린저는 20여 년 전이긴 하지만 이 칼럼에서 ‘무분별한’ 강력 제재는 독재자의 입지만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일 1964년 미국이 쿠바봉쇄를 풀었다면 쿠바는 좀더 일찍 민주국가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역대 최고 수준의 불신을 받고 있는 김정은 정권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최대의 압박보다는 최대 개입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한 셈이다.

살린저는 쿠바봉쇄를 한 지 수십 년이 넘었고, 소련연방이 해체된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미국은 여전히 쿠바 문제를 오인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봉쇄조치나 그보다 강력한 제재만이 카스트로 체제를 무너뜨리고 쿠바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대 쿠바 압박론자들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한 것이다. 살린저는 미국 보수층이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봉쇄나 제재조치로 구소련, 폴란드, 체코슬라바키아, 헝가리 등 동구 국가들의 공산주의를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이들 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얻은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이들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들 나라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항상 대화는 있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고르바쵸프 소련 정권과 유대를 맺기도 했고, 특히 1986년에 열린 미국과 소련의 정상회담은 소련 국민들을 일깨워 그들의 체제전환을 견인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살린저는 봉쇄와 제재는 대상국 지도자들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그 주민들을 파멸시킬 뿐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묘하게도 살린저의 20여년 전 지적은 맞아떨어진다. 미국은 역대 최강의 제재로 압박해 왔지만 북한 독재정권은 더 독해지고, 강해졌다. 지난해 북한의 4,5차 연속 핵실험으로 강화된 미국의 초강력 제재는 오히려 북한의 핵무력 정당화 논리를 더 강화시켜주고 있다. 북한은 공공연하게 미국의 강화되는 대북적대시 정책이 핵무장을 가속화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들이 보유한 강력한 핵 억제력이 미국의 집요한 핵 위협과 공갈이 그 원인을 제공하고 그 잘못된 선택을 이어온 역대 미 행정부들에 의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대해 취하는 조치들을 보면 왠지 미덥지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주변 참모들이 매일 같이 쏟아내는 온갖 엄포성 발언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군사적 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외치고 있지만 접근법이 그다지 창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최대 압박과 개입’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과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안보공약과 무역통상 이슈를 노골적으로 연계하려는 시도 정도가 차별성으로 읽힌다. 미국 내 뿌리 깊은 대북 불신을 고려하면 끄집어내기조차 쉽지 않은 아이디어다. 하지만 그래도 김정은 정권과 제대로 된 대화와 협상 한번 안해 보고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된 트럼프 정부가 마지막 카드라 할 수 있는 군사행동까지 언급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내심과 자제력 부족을 의심케 한다. 보다 분별 있는 제재와 창의적 개입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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