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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기계발 편력

입력
2017.08.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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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무엇을 하기에도 하지 않기에도 애매한 시간. 하루 종일 일에 빠져 있던 몸을 건져내 집 문을 열고 꾸역꾸역 들이미는 순간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이미 머리는 잔뜩 떡지고 얼굴은 퀭해서 눈 밑은 시꺼멓고 피부는 기름이 좔좔 흐르며 허리는 끊어질 듯 쑤셔오고 온 골반과 관절들이 삐걱거리는데, 눈앞에는 온통 엑셀 숫자들과 이메일 글자들이 아른거리고 내 정신머리는 아직도 문 밖에서 기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땐 무슨 자기계발이니 독서니 영어 공부니 운동이니 이런 것들이 너무나 귀찮아지는 것이다. 하루 종일 침침한 형광등 조명 아래 건조한 사무실을 나와 이제 막 안락한 내 방에 이르렀건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다시 자기계발이람. 그렇게 나는 오늘도 소파에 널브러져 치킨을 뜯으며 예능 채널을 돌린다.

웬만한 직장인들은 매일 자기계발의 강박을 느낀다. 자기계발이란 무엇일까. 결국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대에서 조금이라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안정감을 찾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노력하면(Input) 성공한다(Output).' 이렇게도 명쾌한 명제를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자기계발이란 영원히 매력적인 아이템일 것이다.

입사 후 한동안 자기계발을 위한 업무스킬, 문서작성, 경영기법 등을 학습해 보기도 하고, 영어, 운동, 강연 참석 등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무엇 하나 오래 지속할 수 없었고, 출퇴근만으로도 내 인생이 과부화되어 떠밀려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새 나는 자기계발을 위한 자기계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책에서는 6년 간 세 번의 이직을 한 어느 부장이 나온다. 그녀는 주중에는 고객 면담을 하고 주말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였다. 그러나 구조조정이나 타의로 인해 2년 후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녀는 낭패감을 느끼지만, 다시금 미래를 낙관하며 더 열심히 자기계발에 매진한다고 한다. 저자는 '그녀의 실망이 그녀의 낙관주의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이라고 꼬집는다. 엄청난 자기계발로 좋은 패를 거머쥔 순간, 다시 카드가 섞이면 깜짝 놀라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 차원의 '자기' 계발은 성공해도, '조직' 차원에서는 퇴보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맞닥뜨린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도 누군가에 의해 계속해서 카드가 바뀌게 되는 정형화된 삶. 자기계발이 불편한 것은 바로 이러한 개인과 구조 간의 괴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를 열심히 계발하지만 결국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실패의 원인은 '구조'가 아닌 '자기'에게 귀속되는 모순. 철학자 한병철의 말처럼,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에서의 실패자는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결국 우리는 혁명가가 아닌 우울증 환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방적인 자기계발 무용론 또는 만능론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시절 그것은 분명 경직되어 있을지라도 내 인생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였고, 지금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투입한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변화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작은 희망일지도.

다만 자기계발의 동력을 외부에서만 찾는 것은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외부의 자극은 순간적인 동기부여를 줄 순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하긴 힘들다. 외부의 강박이 아닌 내부에서 그 동기를 찾는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일지라도 내면의 충만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 역시 또 다른 자기계발이겠지만.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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