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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중력파와 개성공단

입력
2016.02.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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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 검출이 장안에 화제다. 한국시각으로 지난 12일 0시 30분, 미국의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 과학자들이 사상 최초로 중력파를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1916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그 존재를 예측한 이래 꼭 100년 만이다. 그 전해인 1915년 11월에 아인슈타인이 완성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곡률)으로 이해하는 이론이다. 우주 공간에 태양 같이 무거운 물체가 있으면 그 주변의 공간은 마치 사람이 올라탄 트램펄린처럼 휘어진다. 시간도 휘어져 시간 간격이 달라진다. 지구나 여타의 행성은 이렇게 휘어진 시공간의 최단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만약 시공간의 곡률이 갑자기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면 그 변화는 마치 연못 위의 물결이 주위로 퍼져 나가듯 주변 공간으로 파동을 치면서 전파된다. 이것이 중력파이다. 1915년 이래 지금까지 일반상대성이론을 지지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었지만, 가장 직접적인 증거인 중력파는 100년이 지나서야 검출된 것이다.

LIGO의 중력파 검출 논문을 읽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그래프가 있었다. 13억 광년 떨어진 두 개의 블랙홀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생긴 중력파가 작년 9월14일 지구에 도착해 남긴 신호인데, 원자핵보다 천 분의 일 정도 작은 크기의 미세한 떨림이 불과 0.2초 동안 기록돼 있었다. 그 0.2초를 보기 위해 100년을 기다린 셈이다.

과학이란 사실 기다림의 연속이다. 순간의 영광을 위해 1,000년이라도 기다리는 바보들이 바로 과학자들이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부터 따지면 원자핵을 발견하는 데에 2,00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지난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는 그 존재가 예견된 지 5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물의 근원을 탐구했던 탈레스로부터 2,500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세상 만물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그 일차적인 모범답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의 성공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기나긴 기다림을 먼저 배워야 한다. LIGO의 중력파 검출에는 40년 동안 묵묵히 뒷바라지 해 온 미 국립과학재단의 기다림이 큰 역할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 분야 주무부처의 이름이 바뀌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 대조적이다. 1, 2년 안에 가시적인 연구 성과를 요구하는 모습도 ‘기다림의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비단 과학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 정부가 갑자기 개성공단을 폐쇄한다는 뉴스를 듣고 나는 대북정책에도 기다림의 원리가 적용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 통일대박을 외치던 대통령이 오늘부터 전쟁이라도 치를 것처럼 강경하게 돌변한 모습도 이해하기 어렵다. 70년을 넘긴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려면, 적어도 30년을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과학자들의 기다림의 미학을 정치권도 본받길 바란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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