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화두로 ‘핀테크’가 등장한 지 1년이 넘었다. 모든 것이 핀테크로 둔갑하며 범람하고 있지만, 정작 핀테크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 카드와 보험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두 핀테크 업체 청년 창업자들을 만나 그들이 말하는 핀테크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금융에 단순히 기술을 덧입히는 수준이 아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게 핀테크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뱅크샐러드 김태훈 대표
개인 소비패턴 분석 ‘맞춤 카드’ 추천
카드 3500종 35만개 혜택 DB 구축
금융ㆍ기술 단순 결합 넘은 혁신
예금ㆍ대출 추천 서비스도 준비
김태훈(30) 뱅크샐러드 대표는 금융권에서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다고 자부하는 카드사가 요즘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중 하나다. 뱅크샐러드는 개인별 소비패턴을 분석해 본인에게 제일 혜택이 많은 카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 2014년 8월 출시 이후 1년 동안 30만명이 뱅크샐러드 홈페이지를 찾았다.
뱅크샐러드의 시작은 ‘금융상품 정보는 왜 맞춤형 제공이 안 될까’라는 질문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뱅크샐러드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금융상품 중 카드는 상품이라기 보다는 일상적인 재화에 가깝다”며 “카드부터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탄생한 뱅크샐러드의 사업 모델은 간단하다. 홈페이지의 경우 본인이 자주 가는 가맹점과 지출액을 선택하면 이를 분석해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오는 카드를 추천한다. 뱅크샐러드가 국내에서 사용되는 카드 3,500종의 35만개 혜택이 담겨 있는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달 전에는 모바일 앱 버전을 출시했다. 앱은 사용이 더 쉽다. 앱만 깔면 문자로 오는 카드 결제 내역이 자동으로 분석된다. 벌써 3만명이 앱을 다운 받았다.
사업이 커지면서 카드사와의 위치가 역전됐다. 초기에는 카드사가 꺼려하는 정보로 사업이 되겠냐며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 지금은 카드사에서 하나의 판매 채널로 자리매김했다. 카드사는 뱅크샐러드의 추천 카드 목록에 자사 상품을 올리는 ‘입점료’ 명목으로 월 일정액을 낸다. 카드 혜택이 변경될 경우 바로 통지해 알리는 것은 물론이다. 고객이 추천 받은 카드를 온라인 홈페이지나 앱에서 신청해 발급받을 경우에도 카드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지금은 카드만 서비스 하고 있지만 최종 목표는 ‘금융상품 백화점’이다. 2월 중으로 카드와 같이 개인맞춤형 예ㆍ적금 상품 추천 서비스를, 올 여름 안으로 대출 상품 추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정부의 ‘금융상품 한눈에’는 맞춤형 서비스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예ㆍ적금의 경우 개인 금융정보를 입력하면 기본금리 외에도 우대금리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엔진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인터넷뱅킹이 얼마나 잘 돼 있는데 핀테크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 김 대표는 “핀테크를 ‘금융’과 ‘기술’의 단순 결합이 아닌 소프트웨어 회사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존 금융서비스의 혁신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며 “혁신의 물꼬를 트기 위한 핀테크 오픈 플랫폼 구축 등 정부의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마이리얼플랜 김지태 이사
보험 설계안 검증해 소비자에 추천
아버지 ‘키코 파산’ 계기로 창업
금융사 손 닿지 않았던 분야서
기술 통해 비합리ㆍ비효율 제거
‘마이리얼플랜’은 금융권의 핀테크 스타트업 가운데서도 사업모델이 특이하다. 언뜻 보험 가입자와 설계사를 이어주는 단순 중개 서비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설계사들의 보험 설계안을 검증해 추천하는 ‘분석ㆍ평가 서비스’에 더 가깝다. 실제로 마이리얼플랜에는 보험 계약 체결 여부와 상관 없이 설계안 검증의 대가로 월 회비를 낸다. 40만명이 넘는 보험설계사 홍수 속에서 진짜 고객에게 맞는 설계안을 걸러주는 ‘과정’ 자체를 새 금융서비스로 보고 있는 것이다.
16일 만난 김지태(26) 마이리얼플랜 공동창업자 겸 이사는 “보험은 금융업계 중 정보의 비대칭성이 가장 심한 분야”라고 운을 뗐다. 마이리얼플랜 서비스의 이용 방법은 이렇다. 고객이 마이리얼플랜 홈페이지나 모바일앱을 통해 개인정보와 성향을 입력하면 24시간 안에 설계사들이 설계안을 짜서 입찰에 참여한다. 분석 시스템이 고객 정보와 설계사들의 안을 매칭해 가장 적합한 설계안을 3개 제안한다. 고객이 이 중 마음에 드는 설계안을 선택하면 해당 설계사에게 고객 연락처가 전송돼 상담이 이뤄진다.
반응은 고무적이다. 시험서비스 기간을 포함해 작년 1월 출시 후 1년간 누적 중개액이 100억원을 돌파했다. 서비스에 등록된 보험 설계사는 400여명, 하루 평균 신규 가입 고객은 100명 가량이다.
김 이사가 처음부터 보험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IT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공동창업자 김창균씨)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키코 사태로 파산한 뒤, GA(일반보험대리점)를 운영하면서 보험시장의 불합리성을 느낀 것이 사업의 발단이 됐다. 미국에서 금융공학을 공부하던 김 이사도 흔쾌히 아버지와 손을 잡았다.
마이리얼플랜은 유명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처럼 보험업계의 보험설계안 분석ㆍ평가서비스 업체를 표방한다. 김 이사는 “정부 주도의 보험다모아 사이트도, 거대 보험사도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정보를 담보하진 못한다”며 “이런 핀테크 사업모델은 여러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스타트업이 더 잘할 수 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자청약을 핀테크라고 광고하는 게 국내 보험업계의 현실. 그는 “우리가 전문성과 실력 있는 설계사를 가려내듯이 기술로 비합리성이나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게 핀테크의 본질”이라며 “기존 금융회사의 손이 닿지 않았던 분야에서 우리 같은 핀테크 업체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서비스가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