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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교육의 과정과 결과

입력
2017.08.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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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등 임용고시생에게 메일을 받았다. 오래 전에 내가 쓴 학습법 책을 보다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전화 상담을 했는데 노량진에서 3년을 보내면서 피폐해졌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돕겠다는 말을 했다. 절박할수록 공부가 잘 되지 않는 역설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꼭 합격해야 한다고 결과에 집착할수록 과정은 부실해지고 그만큼 합격과 멀어지는 안타까운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나는 정말 운 좋게 일찍 깨달았다. 공부하기 싫어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을, 마치 녹화해서 보는 것처럼 자세히 관찰해서 얻은 결론은 시험과 성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수록 공부가 잘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대학에 못 가더라도 좋으니 매 순간 즐겁게 공부하자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원인을 찾아 하나하나 해결해나갔다. 결국 시험과 성적이라는 결과를 의식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과정인 수업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예습하고 복습한 게 전부였지만 원하는 성적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개인적인 성공 경험과 뇌 과학의 연구 성과를 접목해 나름의 학습법을 개발했다. 출판을 하고 대치동으로 진출해 본격적으로 학습법 컨설팅을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충분한 학습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결과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에게 과정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산만한 모습을 보이면 집중력을 탓하지 않고 시험문제가 아닌 공부하는 내용에서 자기 연관성을 찾아 필요성을 느끼도록 했다.

게으른 모습을 보이면 성실성을 탓하지 않고 문제풀이보다 궁금증을 유발하고 해소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부진한 성적을 놓고는 꿈과 목표를 다그치지 않고 진도와 학습량을 조절해 무리하지 않도록 했다. 사람마다 다른 관심과 속도 그리고 방법의 차이를 최대한 존중하는 개별화 교육의 원리를 적용해 과정에만 집중하도록 한 결과는 놀라웠다. 상위권은 성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으며 중위권은 실천력 부족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 하위권의 공부 기피증도 크게 약해졌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내가 개발한 학습법은 점점 낡은 것이 되어 갔다. 과정보다 결과에 초점을 맞춘 사교육이 점점 득세했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논리가 먹히면서 예습과 복습을 중심축으로 하는 과정 중심의 학습법은 위축되고 결과를 뒤집기 위한 문제풀이가 대세를 장악했다. 평소의 체력 다지기와 기본기 숙달은 뒷전이고 슛 연습만 하는 모습이라니.

비슷하게 학교 교실도 빠르게 변해갔다. 입시라는 결과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과정은 모두 설 자리를 잃었다. 입시과목이 아닌 수업은 휴식시간이 된지 오래고 시험공부조차도 성적만 남을 뿐 내용은 사라졌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읽은 문학과 비문학, 영어 지문, 수학 개념 그리고 사회와 자연에 대한 지식은 모두 사라졌다.

대입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입시 결과 못지않게 학생들이 학교에서 진정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최소한 방해하지 않는 입시제도가 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학창시절 시험공부에 매달리느라 소홀했던 사람답게 사는 법, 바로 민주시민교육의 절실함을 주장하고 싶은데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미래역량은 또 어떤가. 경쟁이 있으니 변별해야 하고 또 공정해야 한다는 말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하지만 변별과 공정 때문에 잃게 되는 것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소수의 변별을 위해 다수가, 객관식 문제 때문에 창의성과 비판정신이, 하루뿐인 수능 때문에 학창시절 전체가 희생되는 것이라면 주객이 전도된 건 아닐까. 결과가 중요하다는 주장과 죽은 과정을 살리려는 주장,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이제는 만나야 하는데 큰일이다.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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