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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국립 야생동물 생크추어리'는 헛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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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국립 야생동물 생크추어리'는 헛된 꿈일까

입력
2018.07.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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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수영장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있는 북극곰 '통키'. 한국에서의 마지막 여름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수영장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있는 북극곰 '통키'. 한국에서의 마지막 여름이다. 연합뉴스

#1

국내 유일의 북극곰 ‘통키’가 오는 11월 영국 요크셔 야생공원으로 간다. 사람 나이로 치면 70~80세의 고령인 통키가 남은 생은 다른 북극곰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요크셔 야생공원은 북극곰 보전 활동을 진행할 만큼 북극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경험이 풍부한 곳이라고 한다. 

어미 사자 '해리'(왼쪽)와 아기 사자 '해롱이'. 동물자유연대 블로그 캡처
어미 사자 '해리'(왼쪽)와 아기 사자 '해롱이'. 동물자유연대 블로그 캡처

#2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세 마리 사자 가족도 미국의 야생동물 생크추어리(보호구역)로 이주했다. 3년 전 부모 사자가 사육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이후, 이들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좁은 방에서 지내야 했다. 유가족의 고통을 보듬으면서도 사자가 사자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이들을 먼 타국으로 보내는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지금은 세 마리가 미국에서 안정적인 적응 과정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동물원 동물들을 타국의 동물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 반해, 이웃나라 일본에는 자기 혁신을 통해 동물에게 생태적 환경을 제공하고 관람객까지 유치한 동물원이 있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 있는 아사이야마 동물원 얘기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펭귄을 날게 하라(2007)’는 책으로 소개되었고,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심지어 한때 인기 강사들이 '성공 스토리'를 언급할 때 단골로 등장했던 소재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소도시의 작은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10명도 채 안 되는 직원들이 ‘펭귄을 날게 하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마치 관람객의 머리 위로 펭귄이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펭귄 사육장을 터널형 수족관 형태로 탈바꿈한 것. 여기에 펭귄들의 부족한 운동량을 늘리기 위해 산책 시간도 마련한다. 북극곰 사육장도 리모델링 해 물범을 사냥할 때처럼 북극곰이 빙상에 뚫린 작은 숨구멍을 통해 관람객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일게 만들었다. 시작은 동물원 살리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물의 생김새만 보여주는 행태 전시에서 동물의 생태까지 보여주는 행동전시로 동물원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펭귄을 날게 하라'는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동물들의 생태를 보여주는 행동전시로 동물원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게티이미지뱅크
'펭귄을 날게 하라'는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동물들의 생태를 보여주는 행동전시로 동물원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 역시 영화로 책으로 드라마로까지 이 이야기를 여러 번 보았다. 볼 때마다 우리 동물원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동물원 관계자들도 함께 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만큼 이 프로젝트 이전의 아사이야마 동물원과 우리 동물원의 처치가 많이 닮아 보였고, 우리 동물원이 어떻게든 구성원들을 설득하여 변화의 모범답안을 찾아야 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백 번의 말보다는 한 번의 보여줌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절실함도 있었다.

우리나라 동물원 동물들도 콘크리트와 철장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종욱 제공
우리나라 동물원 동물들도 콘크리트와 철장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종욱 제공

아사이야마 사례를 보면 이 모든 혁신을 가능하게 한 이는 바로 수의사이자 동물원장, 이 한 사람의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년을 앞둔 말단 공무원이면서도 동물원을 없애자는 반대파들로 포진한 의회와 시장 앞에 서서 모든 사람이 안 된다는 걸 자기 혼자 된다고 용기 있게 강변한다. 그가 진심으로 동물원의 미래에 대해 고뇌하고 그만큼 동물원에 애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자 만용이었다. 물론 그의 옆에는 동물들을 자기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육사들이 있었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젊은 직원들도 있었다. 또 마침 시장이 온건파로 바뀌는 정치적인 운도 따랐지만, 이 모든 작은 힘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건 오직 그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원장이나 소장 일인 지배 체제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좋은 원장을 만난 것이 아사이야마 동물들에게는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사이야마와 규모가 비슷한 우리나라의 다른 동물원들도 공통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대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해 예산이 지역마다 들쭉날쭉이고, 무엇보다도 동물이나 동물원에 대한 철학 부재 상태인 경우가 많아 눈에 띄는 개선이 힘들다. 동물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낮다 보니, 돈도 안되고 민원만 많이 들어오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개선하기보다는 민간에 위탁하거나 없애자는 주장이 늘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벤치마킹을 위해 아사이야마를 다녀온 타 동물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펭귄 사육장이나 백곰 사육장, 원숭이 사육장 일부를 제외하면 여전히 낡고 초라한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약간은 실망 섞인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만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사이야마는 세계의 모든 가난하고 초라하며 소외받는 동물원들의 롤모델이 되었으니,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 아사이야마 동물원 펭귄들의 산책 시간. 'bryan' 플리커 계정
일본 홋카이도 아사이야마 동물원 펭귄들의 산책 시간. 'bryan' 플리커 계정

이처럼 아사이야마 역시 아직까지는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할 거다. 사각지대에 있는 코뿔소를 질주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고 홀로 있는 아프리카코끼리에게도 짝과 무리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아사이야마보다 훨씬 뒤떨어진 환경의 우리도 펭귄이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원숭이들도 마음껏 줄타기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귀한 동물들의 번식도 성공해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아사이야마 동물원 이야기는 자기계발 강사들을 통해서 공유되는 성공담으로만 치부되어서는 안되며, 우리나라 동물원의 현재를 보는 창이 되어야 한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아사이야마 동물원 이야기를 보고 공감하고 우리나라 동물원의 미래를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국립 야생동물 생크추어리가 우리나라에 생긴다는 건 헛된 상상일까? 게티이미지뱅크
국립 야생동물 생크추어리가 우리나라에 생긴다는 건 헛된 상상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야생동물들이 본연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나라에 있는 국립 야생동물 생크추어리로 이주해 온다는 상상은 ‘펭귄을 날게 하라’만큼이나 헛된 것일까?

최종욱 수의사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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