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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아 성매매 누명… 배상보다 처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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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아 성매매 누명… 배상보다 처벌을

입력
2017.01.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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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ㆍ법원 모두 성매도자로 판단

매수자에 손배소 항소심서 승소

부모까지 정신과 치료 등 고통

“미성년 성관계 강간 인정 연령

기준 13세에서 16세로 올려야”

지능지수(IQ) 70, 7세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경계성 지적장애아 김하은(16ㆍ가명)양은 열세 살 생일이 두 달 지난 2014년 6월 어머니가 외출을 한 사이 휴대폰을 갖고 놀다 떨어뜨려 액정을 깨뜨렸다. 놀란 김양은 혼이 날까 두려워 가출을 감행했고,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 ‘재워주실 분을 구한다’고 글을 올린 뒤 양모(26), 이모(25)씨 등 남성 7명과 만나 성관계를 맺거나 유사 성행위를 했다. 김양은 실종신고 일주일 만에 한 공원에서 발견됐고, 자해 시도를 하다 정신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양과 성관계한 남성들은 성폭행범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성매수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이다. 현행법은 만 13세 이상인 경우 스스로 성관계를 결정할 수 있다고 봐 13세를 2개월 넘긴 김양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지적 장애는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김양은 기나긴 민사소송을 통해서야 성매수 남성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손배소 판결이 상급심에서 잇따라 뒤집히면서 아동의 성폭력 피해를 폭넓게 인정하는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2부(부장 한숙희)는 6일 김양과 김양 부모가 이씨를 상대로 2,0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양도 자신이 마음에 들어 성행위를 한 것’이라는 이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모녀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서울서부지법 민사2부(부장 이인규)도 김양 가족이 양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1,2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승소까지 과정은 지난했다. 김양 어머니는 사건 발생 후 서울의 한 해바라기아동센터에 성폭력 신고를 했으나 센터는 “성매매 사건은 도울 수 없다”며 지원을 거절했다. 어린 딸에게 몹쓸 짓 한 남성들을 처벌하려 했던 김양 부모의 바람은 첫 관문부터 벽에 부딪혔다. 이후 김양 측은 십대여성인권센터 문을 두드렸고 함께 민사소송에 나섰다.

성매수 남성 2명에 대한 손배소 1심에서 재판부는 ‘김양이 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만 13세 미만은 자발성 여부와 무관하게 성관계를 맺으면 강간으로 인정(의제 강간)되지만 김양은 만 13세 이상이어서 피해자가 될 수 없고, 김양 스스로 대화방을 개설하고 해당 남성들이 잘 곳을 제공하는 등 대가성이 있어 자발적 성매매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김양의 패소 사실이 알려지자 178개 여성인권단체들은 지난해 5월 “법원이 장애 아동을 보호하기는커녕 성매매 행위자로 낙인 찍었다”며 반발했다. 김양 부모 역시 생업을 중단한 채 재판에 매달렸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항소심에서나마 성매수 남성들에 대한 배상 책임이 인정됐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법을 고쳐 아동 성매수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양 소송을 도와 온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당초 경찰, 검찰, 법원 모두 김양을 자발적 성매도자로 봤다”며 “제2의 김양 사태를 막으려면 성매매 청소년을 피해자로 규정하도록 아동청소년보호법(아청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미성년자의 의제강간 기준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올리는 내용의 아청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조 대표는 “같은 법원에서도 재판부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는데다 인권단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김양은 계속 자발적 성매도자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김양 사례는 경계성 장애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재판부가 판단을 달리했다”며 “법조인들도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인권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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