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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이슬람 공포증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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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이슬람 공포증의 정치학

입력
2015.12.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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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재앙으로 이르는 많은 길이 있다. 탐욕, 오만, 정치 선동가의 카리스마, 그리고 아마도 그 중 가장 위험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공포다.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히스테리가 심해지고 그런 히스테리는 종종 집단 폭력을 야기한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활이 걸린 싸움을 하고 있다고 확신시킬 때, 그러니까 생존이란 것이 ‘우리냐 아니면 그들이냐’의 문제일 때가 되면 어떤 일이든 가능하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는 정치적 재앙의 모든 요소들을 갖췄다. 오만, 카리스마, 탐욕, 그리고 아리아인과 유대인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갇혀 있다는 생각까지. 물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부터 유럽의 마린 르 펜이나 헤이르트 빌더르스까지 오늘날 서방의 어떤 정치 선동가들도 히틀러에 견줄 수 없다. 누구도 대량 학살은 말할 것도 없고 독재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공포정치를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자신은 공개적으로 부유함을 자랑하면서 탐욕을 키우고 있으며 이상한 오만과 모순적인 가식을 고상하게 다듬어 기이한 형태의 카리스마로 바꿔놓았다. 한편으로 그는 세계의 모든 문제점들을 바로잡고 중국, 러시아, 이슬람국가(IS) 또는 다른 누구에게든 누가 보스인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광활하고 강력한 나라 미국이 시리아의 절망적인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슬람교도 망명 신청자들이 사상 최대 규모 중 하나가 될 군사 쿠데타를 벌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테드 크루즈, 벤 카슨 그리고 마르코 루비오처럼 미국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트럼프와 경쟁하는 공화당 동료들은 난민들에 대한 비슷한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좀 더 중도적인 젭 부시뿐만 아니라 크루즈도 기독교도 난민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매년 미국에선 1만 명 이상이 총기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다. 대부분 이슬람과 관련이 없는 사고들이다. 그런데도 모든 공화당 후보들은 총기규제 조치에 반대하는 걸 자랑스러워 한다. 실제로 그들은 사람들이 학교나 술집에 총기를 숨겨서 가지고 들어가는 걸 막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교적 극소수의 이슬람교도 난민일지라도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매우 위험하다.

이슬람교도 테러의 끔찍한 소행이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중동이 계속 혼란 상태로 남아있고 혁명적인 이슬람 세계가 정부에 불만을 품은 서양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한 이슬람교도의 테러는 계속 있어왔고 아마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실존적 위협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인 친구 한 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테러가 한 번만 더 일어나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이슬람교도의 충격적인 살인행각에 겁을 먹은 미국인들이 공포감 조성에 가장 뛰어난 자에게 투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나 가능하겠지만 나는 미국 유권자들이 그렇게 어리석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큰 위험 요인은 선동가들이 주류 정치인들마저 자신들의 선거 캠프로 모을 것이란 점이다. 11월 13일 파리 테러 이후 인기는 없지만 대체로 합리적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우파ㆍ극우파 정치인들에 의해 약골이라 불리는 걸 걱정한 나머지 국가비상상태 그리고 IS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프랑스의 비상사태가 지속된다면 경찰은 영장 없이 사람들을 체포하고 한밤중에 민간 거주지의 문을 부수며 식당과 다른 공공장소를 무력으로 점거하고 경찰국가의 요원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프랑스 국민들은 이슬람교도의 공격을 무척이나 두려워해 그런 조치들을 폭넓게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들은 거의 확실히 역효과를 낳는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할 순 있지만 혁명가들의 네트워크에 전쟁을 선포할 순 없다. 자신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IS는 국가가 아니다. 올랑드 대통령은 그걸 국가로 대하면 안 된다. 게다가 이라크나 시리아에 있는 IS 본거지를 폭격하는 것이 군사적으로는 이치에 맞을지 몰라도 프랑스 빈민가의 좌절하고 무료하며 소외된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이슬람 혁명의 마력은 깰 수 없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IS의 영리한 지도자들 역시 ‘우리냐 아니면 저들이냐’의 종말론적 세계관에 의존한다. 대부분의 이슬람교도들은 집단 폭력을 숭배하기는커녕 집단 폭력을 용납하는 폭력적 혁명가들이 아니다. IS는 특히 젊은 이슬람교도들에게 참된 이슬람교도는 서방과의 실존적 전쟁에 있고 이교도들은 철천지원수라고 확신시킴으로써 지지 세력을 넓히려 한다. 그들에겐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공포가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서방 정부가 경찰관들이 안보라는 명목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굴욕감을 주고 괴롭히도록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IS가 유럽인 신병들을 모집하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혁명적 이슬람교도들의 폭력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서구에서 법을 준수하는 이슬람교도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막무가내로 체포하는 일은 싸움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명백히 잘못된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중동의 내전에 관해서라면 서구의 규제가 국내의 공포로 인해 추진된 성급한 군사 개입보다 대체로 더 좋은 전략이다. 미국의 공화당 후보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더 나아가선 미래의 민주당 후보가 나약하다고 비난하기 위해 최근 일어난 파리 테러를 이미 이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IS를 폭탄으로 쓸어버리겠다”고 약속해왔다.

이 같은 호전성은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와 거리를 두도록 밀어붙이는 효과가 있었다. 올랑드 대통령처럼 힐러리는 강경한 발언을 하고 더 많은 군사적 행동을 약속함으로써 대중의 두려움을 진정시켜야 한다.

오바마는 전쟁을 더 벌여야 한다는 유혹에 일관성 있게 저항하고 있다. 그의 정책은 때때로 일관적이지 않고 결단력이 없었다. 하지만 공황에 굴복하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는 그를 겁쟁이라고 비난하는 허풍쟁이들보다 오바마가 훨씬 더 용감하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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