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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또 터진 ‘전기요금 공포탄’

입력
2017.05.1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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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1번가 상품 배송이 빠르다. 지난 15일, 문 대통령은 노후 석탄발전소 8기를 일시 가동중단하고 조기 폐쇄하는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다. ‘탈원전과 친환경 대체에너지 정책’을 공약으로 당선된 그다. 신규 원전건설 계획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는 원전안전을 약속했다. 새 정부에서는 에너지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때쯤 꼭 등장하는 것이 ‘전기요금 폭탄’이다. 저렴한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줄이면 비용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폭탄은 매우 강력해서 전기요금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고, 산업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언론, 전문가, 경제계가 합세해 아침저녁으로 떠들면 웬만한 정부나 정치인도 버티기 힘들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전기요금 폭탄’이 아니라 ‘공포탄’이다. 요금인상을 무기로 겁을 주는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매년 3~6월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을 정례화하고 LNG발전으로 대체하면 연간 4,000억 원의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발생한다. 벌써부터 4,000억을 누가 어떻게 부담 하냐며, 정부가 무책임하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우리나라 전력소비 비중을 보면, 산업 57%, 상업 21%, 가정 14%이다. 소비 비중만큼을 부담한다면 가정은 560억, 우리나라 가구당 1년에 2,930원을 더 내야 한다. 2,930원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1회용 방진마스크 하나를 사도 식구 네 명이면 4,000원이다. 목이 아프면 병원가야지, 공기청정기 구입하면 훨씬 더 돈이 많이 든다.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사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럴 바에야 그냥 1년 전기요금 2,860원 더 내고, 석탄발전소 멈춰 미세먼지 줄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까지 3년 간 상위 20개 대기업이 원가 이하로 할인 받은 전기요금이 3조5000억 원에 달했다. 가장 할인혜택을 많이 받은 삼성전자 4,291억 원, 포스코 4,157억 원, 현대제철 4,061억 원 등. 대기업 전기요금 할인혜택만 중단해도 온 국민이 미세먼지 덜 마실 수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상무부는 포스코가 수출한 강판에 대해 57%를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높은 관세를 책정한 가장 큰 요인은 전기요금 혜택이었다. 한국이 산업용 전기를 지나치게 싸게 공급함으로써 포스코에게 보조금을 지급한 셈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수출경쟁력을 위해 전기요금을 할인해줬지만 관세로 상쇄되어버리는 황당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낮은 전기요금과 전력다소비산업구조로 인해 전력소비가 폭증했다. 1990년부터 2013년 사이 OECD 전체 회원국의 평균 전력생산이 41.5% 증가할 때, 한국은 410.5% 증가했다. OECD 전체 증가율의 10배이다. 이렇게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사회전체가 감당하고 있는 가장 큰 경제적 비용은 ‘기회상실’이다. 현 전기요금체계에서는 에너지효율기술과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은 ‘재앙’이 아니라 에너지신기술과 효율산업 성장으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시민들은 원전에서 안전으로, 미세먼지도 온실가스도 줄이는 에너지 전환을 간절히 원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전기요금 폭탄’ 처리반을 긴급하게 구성해야 한다. 더 이상 전기요금에 대한 공포감 조성으로 에너지전환 정책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계가 더 많은 전기요금을 부담하도록 조목조목 분석해 확 뜯어고쳐야 한다. 에너지다소비산업, 대기업, 원전과 석탄발전소에 유리한 전기요금 체계를 전면 개혁해야 ‘탈원전’ ‘탈석탄’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절대로 속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자.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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