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에 회의적 시각 있지만 도발 악순환 끊기 극약처방 선택, 중ㆍ러에 제재 동참 무언의 압박도
北 인건비 1억弗 이외에 타격 없어 김정은 정권 ‘뼈 아프기’엔 역부족
10㎞ 후방 물렸던 보병ㆍ전차 부대 개성 돌아오면 최전방 긴장 고조
정부가 북한의 잇단 도발을 응징하기 위한 ‘혹독한 대가’의 카드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전격 단행하면서 남북관계의 파국이 불가피해졌다.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 개성공단에 족쇄마저 채운 것은 더 이상 남북 교류는 없다는 선전포고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제재 실효성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고, 자해적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2004년 12월 가동을 시작한 개성공단은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잡던 옥동자로 평가됐다. 남북한 공히 누리는 군사ㆍ경제적 이득이 가장 큰 이유였다. 금강산 관광 중단 및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남북 대결 국면에서도 유일한 버팀목으로 살아 남은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은 값싼 임금과 양질의 노동력으로 운용비를 절감했고, 북한의 경우 5만 4,000명이 넘는 근로자를 포함한 20만 명의 생계가 공단에서 주는 월급으로 해결됐다. 특히 북한에 시장경제를 학습시키는 한편, 남북한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얼굴을 맞대는 교류의 장이자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안보의 완충지대 역할까지 해왔다.
개성공단이 한반도 급변 사태 시 남측 주재원의 신변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질론’과 연간 1억 달러에 달하는 근로자 임금이 북한의 ‘달러박스’또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이란 비판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순기능 역할이 더 큰 것으로 평가되면서, 이명박 정권조차 북핵 처벌 카드에서 개성공단 폐쇄는 제외시켰다.
그렇게 공고히 지켜왔던 개성공단을 정부가 단 칼에 버리게 된 데는 과거와 같은 수준의 대응만으로는 북한의 핵 개발 야욕을 꺾을 수 없고, 이대로 상황을 방치하다가는 북한에 끌려 다니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의 손발을 묶는 고육지책일 수 있다”고 인정한 뒤 “하지만 과거 방식으론 도저히 도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어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 대북제재를 주도하겠다는 결단”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엔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우리 정부가 별다른 독자 제재를 취하지 않은 채로 더 이상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할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앞장서 대북 제재의 물꼬를 틀 테니 중국과 러시아도 뒤따르라는 무언의 압박인 것이다. 이날 정부 고위 당국자가 중국과 러시아 등 제3국으로 북한 근로자가 고용돼 제재 효과가 반감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들도) 당연히 차단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도 중러의 제재 동참을 촉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부가 선제적으로 개성공단 폐쇄 수순에 들어가면서 개성공단의 대북 지렛대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폐쇄 조치로 북한보다 우리가 잃을 게 더 많다는 점에서 제재 수단으로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이 실질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북한 근로자들의 인건비인 약 1억 달러가 전부로, 북한이 대외무역(70억∼80억 달러)으로 벌어들이는 비용을 감안하면 ‘뼈 아프게’ 타격을 주기엔 역부족이란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개성공단보다 임금 수준이 2~3배 높은 중국이나 러시아 지역으로 돌리면 손실액은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 외교안보부처 전직 고위 인사는 “북한 근로자들의 외화벌이를 따지면 개성공단은 10분의 1도 안 될 것인데 북한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 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북한이 개성공단 내 시설 설비를 몰수 해 개성공단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반출해 운영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안보 위협도 감내해야 한다. 휴전선과 맞닿아 수도권을 겨냥할 수 있는 개성이 군사적 요충지로 탈바꿈할 경우 긴장이 고조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개성공단이 들어오는 조건으로 북한군 4개 보병연대와 전차대대가 후방으로 10㎞ 물렸는데, 이를 다시 전진배치하며 맞대응 할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의 출구전략과 플랜-B(예비계획)를 마련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정부는 북한이 핵 개발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할 때라며 사실상 비핵화를 전제조건을 내세웠을 뿐이다. 결국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남북관계는 손 놓고 있겠다는 얘기로, 대북정책의 손발을 묶는 자충수일 수 있다는 평가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나중에 우리가 개성공단의 문을 다시 열 때는 큰 대가가 따를 수 있다”며 “퇴로 없이 남북관계의 지렛대를 스스로 없애 버린 것은 감정이 앞선 자해적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며 대북 제재를 주도하는 자세라는 측면에서 긍정 평가한 의견이 있는가 하면, 실효성 없이 남북관계를 전면 대결로만 끌고 가는 최악의 선택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개성공단 가동으로 북한에 현금이 지원되면서 우리 정부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이번 조치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동시에 주변국의 제재 동참을 끌어내기 위한 불가피한 극약 요법이다”고 말했다. 반면 정성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개성공단마저 폐쇄되면 남북관계는 전면 대결상황으로 이어지게 돼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한국경제도 어려워질 수 있다”며 보다 냉정한 실용주의 정책을 요청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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