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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시간 더 흘러 자칫 묻혀질라

입력
2014.09.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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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경색정국 물꼬 터준 유가족 결단

여야 ‘끝장 협의’ 자세로 다시 마주앉아

‘국민 양해하는 진상규명 방안’ 찾아야

2주일 전 ‘지금 유가족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글을 실었다. ‘세월호 관심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현실이다. 여야와 청와대엔 해법을 기대할 수 없다. 유가족만이 국민의 마음을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론 부분을 새삼 인용한다. ‘국민의 마음을 다시 움직여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의 마음이 지금 이 상태로 그냥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쪽은 세월호 유가족뿐이다. 지난 여름 전국민이 보여주었던 슬픔 분노 사랑 격려에 이제는 대답해야 한다. 정국을 정상화하고, 잊혀져 가는 국가개조의 합의를 되살릴 수 있는 결단을 유가족들이 내려야 한다.’

그 사이에도 ‘희미해지던 세월호 관심’은 변하지 않았다. 간간이 ‘잊지 말자 세월호’ 차원의 보도들이 나왔을 정도였다. 세월호 문제가 다시 와글와글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이었다. 언론들이 ‘이게 웬 떡이냐’는 듯 카메라를 들이대고 지면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은 희미해지고 ‘(힘없는)대리기사를 폭행하는 유가족’이 덧씌워지고 있다. 진상규명 투쟁을 제대로 못해서가 아니라,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유가족 대책위가 경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야에 고객과 대리기사 사이에 불거지는 싸움이라면 보도거리 축에도 끼지 않는다. 이러한 폭행시비는 거의 매일 밤 파출소나 경찰서에 신고ㆍ접수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거의 ‘유병언 추적’ 수준으로 취급되고 있다. 현장의 CCTV 동영상, 팔에 깁스를 한 유가족이 가해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두하는 모습, 자신의 행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야당 의원의 위축된 말투 등은 ‘부도덕하고 모자라는 피의자들’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준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희석되고 엉뚱한 문제만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과 마음이 그에 따라 선회하고 있다는 점은 현실이다.

그러는 동안 청와대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과 유가족 측엔 무슨 변화가 있었나. 새누리당이 요지부동의 입장을 고수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대못을 박았다. 홀로 요동치던 새정치연합은 제풀에 나가떨어졌고, 유가족 측도 스스로 위축되면서 엇비슷한 형편에 처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똘똘 뭉쳤던 국민의 마음도 더 희석되고 더 갈라졌다.

새로 대표를 구성한 새정치연합과 유가족이 다시 만났다. 지난번보다 분위기도 많이 나아졌고, 대화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유가족 측에서 ‘진상조사위의 수사ㆍ기소권을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을 밝혔고, 새정치연합은 ‘유가족과 국민이 양해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 측의 이러한 결단은 세월호 피로감에 젖어가던 국민들에게 산뜻한 관심을 되살렸다. 두 번이나 합의를 지키지 못했던 야당에게 재협상의 명분을 주었고, 여당으로 하여금 요지부동하고 버틸 수 없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유가족과 국민이 (모두)양해할 수 있는 (진상규명)방안’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유가족의 양해는 유가족에게 확인할 수 있지만, 국민의 양해는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여야 정치권의 몫이다. 국민의 뜻을 정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은 여야간 합의가 최선이다. 유가족 측의 결단으로 여야합의의 단초는 만들어졌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유가족 측의 결단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협상에서 ‘국민이 양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유가족도 양해하는 방안’이라면 최선이다. 하지만 ‘유가족이 양해하는 방안’과 ‘국민이 양해하는 방안’에 차이가 있다면 어찌 할 것인가. 유가족 측은 ‘국민이 양해하는 방안’을 수용하는 또 한번의 결단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새로 얻을 수 있는 길이고, 국민의 마음이 실려야 진상규명에 다가갈 수 있다.

유가족의 결단을 요구하는 글을 쓴 후 적지 않은 항의를 받았다. 잘못한 것은 정부여당인데 왜 유가족에게만 결단을 요구하느냐고 했다. 지난 번 글의 결론을 반복한다. 최선과 근본만을 붙들고 있다가는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되레 잃을 수 있다. 방법보다 시기의 문제이고, 지금이 그 현실적인 시기다.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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