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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노랫말의 힘… 윤종신에 바치는 헌사

입력
2015.08.3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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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평범함 속에 있는 깨알 같은 발견이더라고요. 발명은 천재가 하는 거고, 발견은 성실한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 가사를 읽고 ‘아니,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지’ 하는 공감이죠.”

누구에겐가 이런 속설을 들은 적이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글 잘 쓰는 경우는 그때마다 달라요. 일종의 복불복이죠. 그러나 글 잘 쓰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말도 잘 하더라구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일착으로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위의 언급을 한 윤종신이다.

가수 윤종신.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수 윤종신.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종신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작사가 중에 한 명이다. 자기 노래에서뿐만 아니라 남에게 써준 곡들까지, 그의 필력이 발휘된 명곡은 무진장이다. 뭐랄까. 일종의 ‘생활밀착형’이라 할 그의 노랫말은 일상의 기운을 섬세하게 포착할 때 듣는 이들에게 인상적인 설득력을 남긴다. 밑의 가사가 대표적일 것이다.

크지도 않은 작은 내 방에서/가끔 청소할 때 마다 널 떠올리곤 해/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조그만 두 장의 종이/또 왜 그리 많은지… 모두 다 버리는 척 정리한/너의 흔적들이 남은 건/아마 난 준비했나봐/그리워할 걸 알기에

-김연우 ‘청소하던 날’ 중

어디 이 뿐인가. 허공에다 대고 자기의 안부를 혼잣말처럼 되뇌이는 10집의 ‘나의 안부’, “교복을 벗고”라는 가사 때문에 패러디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던 ‘오래전 그날’, 처절함으로는 대한민국 일등이라고 할 수 있을 ‘너의 결혼식’ 등 자신이 직접 부른 가사에서도 꼽아야 할 순간들은 적지 않다. 물론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적어도 나는 밑의 노래를 1번으로 제시할 테지만 말이다.

와이퍼는 뽀드득 신경질 내는데/이별하지 말란 건지/청승 좀 떨지 말란 핀잔인건지/술이 달아오른다/버릇이 된 전화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내 몸이 기운다/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우는 손님이 귀찮을 텐데 달리면 사람을 잊나요/빗속을

-김연우 ‘이별택시’ 중.

게다가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이라는 프로젝트를 지속해오면서 정말 꾸준히도 좋은 노랫말이 담긴 음악들을 들려주고 있다. 말 그대로 매달 조금씩이나마 곡(들)을 발표하는 이 계획은 위험부담이 상당할 수 있었다. 창작이라는 게 ‘강제성’을 부여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영감을 찾아 헤맬 때 프로는 일하러 나간다.”는 명언처럼, 윤종신은 이 프로젝트를 제법 성공적으로 가꿔왔다. 그의 공언처럼 ‘음악의 생활화’를 이뤄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슈퍼스타K 7에서도 윤종신은 헤비메탈 밴드 ‘피해의식’의 무대를 보고 곧장 “월간 윤종신에 가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심지어 영화 쪽에도 관심사를 확장해 매달 한편의 영화를 선정, 이것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시도도 지속하고 있다. 바로 오늘 8월 31일 정오에 음원으로 발표되는 ‘사라진 소녀’는 영화 ‘미라클 벨리에’에 대한 답가라고 한다. 루사이트 토끼가 참여한 이 곡은 동화 같은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영화적 분위기를 음악으로 재현하는데 제법 성공한 모양새다. 특히 드럼과 코러스를 비롯한 여러 악기가 추가되면서 서서히 감정을 고양하는 후렴구 부분이 마음에 쏙 든다.

그러니까, 명곡을 만들어주는 건 결국 ‘가사의 힘’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윤종신의 음악이 ‘모두’ 명곡은 아니지만 그가 꽤 여러 개의 명곡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그의 노랫말이 주는 잔잔한 울림이었다. 이 칼럼을 통해 주장했듯이, 음악을 듣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러져야만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가사의 힘이 발휘된다. 즉, 가사는 어떤 음악을 명곡 혹은 적어도 애창곡으로 만들어주는 최종심급이라고 정리하면 이해가 빠를 듯싶다. 연주곡도 충분히 명곡이나 애‘청’곡이 될 수 있지만, 가사가 들어간 애‘창’곡보다는 그 숫자가 확실히 적다는 게 이를 역으로 말해주는 증거다.

익숙해진 나의 새장은/이제는 버려도 돼요 안 돌아와요/이제 어떻게든 내가 해 나갈게요/그대 알던 소녀는 사라져/저 먼 숲으로 가요/그늘진 낯선 골목도 외로운 밤도/혼자 걸어볼게요.

갓 발표한 ‘사라진 소녀’의 가사 중 일부다. 곡 자체로도 만족스럽지만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보고 듣는다면 그 감동의 깊이가 배가될 것이다. 슬픈 눈물이 아닌 건강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착한 영화, 예쁜 음악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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